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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누구인가?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04.12 18:14 수정 2018.04.12 18:14

이른 봄이나 겨울의 경치는 산의 계곡이나 바위 나무둥치나 가지들을 면밀히 관찰하기 좋아서 화가들은 자연을 그리러 바깥으로 나아간다.
조선시대의 진경산수화가 겸재 정선이나 다양한 재능을 보인 단원 김홍도, 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 김정호선생은 추위나 교통을 불편함을 감내하며 팔도강산을 두루 살피며 명산대천을 그리거나 산맥과 물줄기를 연구한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근자의 70-80년대 화가들도 봄이면 이젤과 화판을 들고 산이나 들로 근교로 아니면 아주 먼 곳으로 어디든지 사생을 하러 나가곤 했다. 초봄에 호호 손을 불며 붓과 물을 만지며 물감을 칠하는 그 매력이란 정말 현장에 가 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 깡소주를 마시며 먹물이 얼까봐 소주를 부어 그리기도 하고 손이 시러워 호주머니에 넣고 오돌 오돌 떨면서 주위의 사냥감을 찾던 그런 시절이었다.
갈대와 어우러진 멋진 바위를 그리기 위해 50호 캔버스를 업고 마을 뒷산에 오르내리던 대학 3학년 시절 겨울 생각도 난다. 유화도구들을 들고 한겨울 산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요즘 화가들은 스케치나 현장에서의 작업은 거의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사진기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아니 스마트 폰이면 충분하다. 또한 다큐멘터리 등 각종 영상자료들로 인하여 집에서도 편안하게 그리는 시절이 되었다. 심지어 캔버스나 화지에 사진을 리얼하게 프린트해서 그 위에 사진보다 더 실감나게 그리는 작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실 필자도 사진 같은 그림을 보면 아! 사진을 밑에 깔고(실사) 그렸구나 하며 의심을 한다. 그만큼 현대는 기계의 기술을 빌러 그림을 수월하고 리얼하게 그릴수가 있다. 사과를 그 얼마나 잘 그리는가? 자두는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그리는가? 포도, 꽃, 인물, 동물 모두 그리 놓으면 사진이다. 방법이야 어떻든지 리얼한 그림 앞에서 관객들은 쏙 빠져 들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사실적 그림에 감상자들은 환호성을 보낸다. 그만큼 사람들은 리얼함을 좋아한다. 그러니 현수막 실사를 하고 그 위에 그대로 그리거나 일부분 효과를 내어 싸인하면 그만이다.
민화도 그렇다. 처음 현대 민화라는 품목을 접하였을 때 이것은 자수와 같은 부분이다라고 단정 지었다. 밑그림 즉 본을 놓고 그 위에 다시 본을 베끼고 선을 먹으로 그리고 채색을 하니 데생실력도 필요가 없다. 하기야 그러니 마을마다 화가?가 흔한 시대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화가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지금껏 역사속의 화가들은 미술에 대한 애정을 물론이고 투철한 작업정신과 자존심, 철학으로 단단히 무장되었다.
사물을 보고 그리는 데생공부부터 스케치, 드로잉, 크로키, 수채화, 유화 등 회화의 기본과정을 머리와 눈과 손을 철저히 연마하며 화가의 기초를 다졌었다. 동양화도 마찬가지이다. 먹을 가는 자세부터 붓을 쥐는 자세는 가본이고 선긋기, 사군자, 산수화, 인물화, 수묵화, 수묵채색화, 채색화 등 과정을 차근차근 배워 올라가는 과정이 나타난다. 즉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이 화가가 가는 길목이다.
후배들이 가끔 기량을 올리는 방법을 묻거나 급한 마음과 상업적 태도를 보이면 필자는 이런 충고를 한다. “십만 장의 작품을 그려야 화가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젊었을 때 매일 4시간 정도 자며 작품에 혼신을 다하라고 부탁한다.
가끔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땐 참 쉬운 칭찬이로구나를 느낀다. 천재는 관심이 있고 몸을 담그고 연마를 해 보아야 그 능력을 가늠할 수가 있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 없이 천재성의 끝을 확인 할 길이 없다고 본다. 그대로 베끼는 것은 재주일 뿐이다.
화가라면 그런 기술도 중요하지만 창작이라는 두 글자를 해결 못하면 그 수준은 아마추어일 뿐이다. 현대가 요구하는 융합과 창의는 이미 인상파 이후 많은 작가들이 실천을 하여 왔고 역사에 그 이름들이 기록되었다.

▲ 권 정 찬 경북도립대교수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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