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온갖 못쓸 짓을 다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의 문화재 유물을 강탈해간 것이다. 이때에 일제에 맞서, 우리의 문화재를 지킨 이는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선생이다. 간송은 세종실록에 언급된 해례본을 소유주가 1천 원을 불렀다. 전형필은 10배인 1만 원을 지불했다. 기와집 10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민족혼을 살리고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훈민정음 해례본이 그 정도의 대접은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일제가 우리 문화재의 강탈상을 보면. 대표적인 자는, ‘오구라(小倉武之助)컬렉션’이다. 그 다음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다. 이 중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문화재 도굴의 왕’이었다.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간 장본인이다. 도굴 약탈 강탈 등의 못된 수법으로 가져간 문화재는 무려 1천여 점에 달한다.
오쿠라는 경부철도 대구출장소 경리주임으로 일본에서 건너왔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한 고리대, 부동산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자신의 부를 이용하여, 1921년부터 한반도에 걸친 광대한 문화재를 수집했다. 단순한 문화재 수집에서 벗어나, 강탈 약탈 및 도굴까지 동반한 방법까지 자행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불법적인 문화재 수집 행각은 그의 수집품들 중 하나인 ‘조선왕실 풍혈반’의 수집 과정에서만 보더라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1981년 오구라 컬렉션이 도쿄박물관에 기증될 때 제출된 목록서를 보면, ‘명성황후 시해현장에서 반출’이란, 기록도 있었다.
2016년 8월 15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파악된 일본 소재 우리 문화재는 모두 7만1천375점이었다. 지난해 6월 30일을 기준, 문화재청이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에 소재가 확인된 일본의 한국 문화재는 3천600여 점이 증가했다. 환수 문화재는 단 76점만 늘었다. 우리 문화재가 어디에 있던, 우리의 법적인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외국으로 나간 것은 하나도 없다. 강탈 약탈 도굴 방법뿐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올해 국외 소재 우리문화재 찾기 운동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조성을 위해, 국외소재 문화재 관련 책자 발간 및 학술행사를 개최한다. 문화재 환수를 위한 범국민운동을 서울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경북도가 발간 준비 중인 국외소재 문화재 관련 책자는 2종이다.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소장품 연구서와 경북 반출문화재 증거 자료집이다. 고려미술관 소장품 연구서는 고려미술관 소장 유물과 관련한 국내 최초 도서로 소장 유물 소개와 함께 유물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담았다. 일제강점기 경북 반출문화재 증거 자료집은 일제강점기 시절 불법 반출 문화재 관련 발간자료(당시 신문기사 등)를 수집한 책자이다.
경북도는 ‘국외소재 우리문화재의 현황과 문화재 환수’라는 주제로 관련 전문가들 초청해 학술행사를 개최한다. 경북도는 지난 2011년부터 지방정부 최초로 (사)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과 함께 민·관 합동으로 국외소재 우리문화재 찾기 운동을 전개해왔다.
일본·유럽·미주 등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 환수를 위한 기금조성과 범국민 참여유도를 위해 서명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지난해 9월 1990년 흑백사진에 담긴 우리 문화재전을 개최해, 일제강점기 건축·고고학자인 노세 우시조(能勢丑三)가 1920년대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직접 촬영한 우리 문화재의 유리건판을 출력해, 90여 년 만에 일반에 최초 공개했다. 11월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재현작품전’을 통해 미국 LA카운티 박물관에 보관된 ‘소조 동자상’,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에 소장된 ‘직부사자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보관된 ‘조만영초상’등 해외에 나가있는 국보급 유물들의 재현 작품 50여점을 선보였다.
문화재는 자기의 출생지인 조국으로 가야한다. 강탈 약탈 도굴 등의 방법으로 뺏다시피 해간 문화재는 반드시 돌려줘야한다. 이는 경북도의 차원이 아닌, 정부의 차원에서, 논의가 되어야한다. 국제기구의 힘도 빌려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