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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傳記) 한 권 보다 예찬시 한 편이 낫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05.02 19:18 수정 2018.05.02 19:18

나는 유복자로 친형은 없고, 남자 사촌동생은 있지만, 형님으로 육촌형님이 두분(김구원 형, 김구해 형)이 있다.
구원형님은 나보다 아홉 살 손 위시다. 배움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인간성이 부드럽고 입담이 뛰어나, 우리집에 놀러 오시면 6촌동생인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형님이 놀러오는 날이 기다려졌다.
6.25가 터지자, 형님은 의용군(인민군)에 강제로 끌려 나갔다가 인천상륙이 성공하자 구원형은 인민군에서 탈영하여, 국군에 귀순하여 북한군과 전투하다 부상을 당하여 제대를 하게 되었다.
구원형님은 육군병원에서 부상병 시절 예수를 영접하여 감명 깊은 찬송가를 내게 들려주었다.
구원형님은 육군에서 의병제대를 하고, 철도 전기분소에 취직했지만, 위험이 도사린 전기업무를 침착하게 잘 처리하여 표창장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숙모(우리 어머니)가 3남매를 데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집에 오실 땐 칡덩굴로 묶은 제법 무거운 장작 한 다발을 어깨에 메고 오셨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우리집은 겨울살이가 쉽지 않았다. 구원형님이 우리 집에 오실 때 마다 가져온 장작 다발은 더 없이 고마웠다. 구원형님과는 육촌간이지만, 친형제 못지않게 사이좋게 지냈다.
몇 해전, 아우인 내게 좋은 인상을 남기신, 구원형님이 돌아 가셨다.
나는 형님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어 형님의 자취를 세상에 남겨 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구원형님의 전기(傳記)를 지어드리고 싶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구원형님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낸다면 애쓴 만큼 성과가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뜻이 진실로 있다면, 길도 꼭 있게 마련이다. 2017년 2월 22일, 눈발이 날렸다. 그 날 눈발이 날리는 걸 보고, 눈 오는 날 장작 다발을 메고 우리집에 오신 구원형님이 생각 나 하느님의 크신 은총으로 ‘눈 오는 날’를 짓게 되었다.

눈 오는 날
김시종

날리는 눈발을 타고
구원형(재종형)이 오신다.

어깨에 장작다발을 멘
구원형이 오신다.

내 어린 날 겨울은 너무 추웠다.
아버지가 안 계신(죽고 없는) 우리 집엔
늘 쌀독 밑바닥이 보이고,
겨울밤에도 아랫목은 냉돌이었다.

겨울이 더욱 추운 우리집에 구원형님은
올 때마다 장작 한 다발을 메고 오셨다.
형님이 가져오신 장작 덕분에
그 날 밤은 등이 따뜻했다.

지금 구원형님은 눈 이불을 덮고
이천호국원에서 긴 잠을 주무신다.

내 마음속의 난로 옆에서
나와 구원형님이 따뜻한 표정으로
노변정담을 웃으며 나눈다.

(2017년 2월 22일 作)

-고맙고 사랑스런 구원형님, 아우의 서툰 글솜씨가 형님의 따뜻한 마음을 제대로 그려낸지, 송구스럽습니다. 형님의 영원한 명복을 비나이다.

지난 3월 19일 오전 10시에 가출하여 실종한 애견차돌이(愛犬次乭伊)를 그리는 시를 지었다.
2002년 10월 28일 오전 10시에 태어나 2018년 3월 19일 오전 10시에 실종한 ‘애견차돌이’를 그리는 시를 지어, 내 마음의 아픔을 다독이고 차돌이에 대한 나의 융숭깊은 마음을 시 속에 오래 갈무리 하련다.

‘애견’ 차돌이(愛犬次乭伊)‘ 문양석
김시종

머얼리 떠난 줄 알았더니,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차돌아!

머리맡에  놓여 있는
애견 차돌이의 문양석.

강아지가 나는 참새를 떨어뜨려,
나를 놀래준 지난날 차돌이 무용담이,
검은 돌에 희게 새겨졌구나.
실감(實感)나게!
뚜렷하게!

(2018년 4월 25일 22시 30분)

▲ 김 시 종 시인 /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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