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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내가 누군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0.01 18:44 수정 2018.10.01 18:44

말은 인품이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따뜻하고 진심어린 말은 그만큼 값어치가 있다. 김춘수 시인의 시(詩)를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서로 교섭이 가능한 상태를 만든다.
취객(醉客)은 안하무인격이다. 첫 대면에서‘내가 누군데’하며 공연히 우쭐대는 불학무식한 태도를 가졌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다. 그러면서도 뭔가 든든한 뒷배가 있는 듯이 말한다. 자신은 존중받아야 하고 상대방은 업신여기는 행동이 어불성설 아닌가? 그는 모른다. 얼토당토 않는 협박과 욕설로 인해 그 모든 것의 결과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취객의 무모한 행동은 꼴사나운 객기에 지나지 않는다. 주변인들 선의의 행동에 대해 괜한 시비를 걸며 도움은 마다한 채 여러 사람 앞에서 추태를 보여 선량한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계속되는 행동에 대해 경범죄단속을 하려고 하면 또 시작된다. ‘내가 누군데’도대체 누구일까요? 그도 술에 취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이다.
취객은 존중의 실천이 없다. 어쩌면 상호 존중의 원칙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존중의 원칙은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가 이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취객은 세상 것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한 나를 향한 존중이 더 크기 때문에 이웃을 향한 존중이 왜 중요한지 모른다.
공연한 호기로 자신이 낮아지는 것은 도저히 인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이 높아지기 위한 노력을 더욱 더 해야겠지만, 그보다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즉 남을 억지로라도 낮추는 방법이다. 상대방을 낮추면 낮출수록 그와 비교해서 자신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던지 자기에 이롭게 되도록 말하거나 행동하는 태도는 아전인수 그 자체이다. 공연히 우쭐대며 ‘내가 누군데’하며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엄마들이 아기의 서투른 말을 알아들어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배우는 마음으로 내 이웃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듣는 사람만이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
상대방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 편견 없이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자신이 낮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오히려 행복한 삶을 가져다준다.
나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이 올바른 판단은 공동체의 뜻에 맞춰 살아가게 만들며, 오만한 추태에서 보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세상에서의 행복을 희망하게 만든다.
취객의 관점이 아닌 공동체의 관점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때 우리는 매순간 감사하면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 전 문 석 경위 / 문경경찰서 점촌파출소 순찰3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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