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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북한의 유관순, 동풍신 열사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0.09 19:06 수정 2018.10.09 19:06

올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거행된 제99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그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3·1운동의 완성 뒤에는 그들의 피와 땀, 눈물이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문 대통령이 언급한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동풍신 열사'도 있었다.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18살 유관순 열사는 지하독방에서 고문과 영양실조로 순국했습니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동풍신 열사는 함경북도 명천 만세 시위에 참여했고 이곳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남한의 유관순 열사와 직접 비교한 북한의 동풍신(1904~1921) 열사. 아마 많은 분들이 생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익히 알고 있어도 북한의 동풍신 열사는 그 동안 듣도 보도 못 했기 때문이다.
동풍신 열사는 유관순 열사처럼 3·1운동 때 함경북도 명천에서 일제와 맞서 싸우다 서대문감옥에서 옥사한 소녀이다. 그런데 유관순에 필적하는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풍신 열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이름조차 생소하다. 왜일까? 동풍신 열사가 북한 출신이기 때문이다.
서울서 멀리 떨어진 함경북도에서는 3월 10일 성진에서 처음으로 만세 시위가 시작되고, 3월 14일에는 화대리 헌병 분견대 앞에서 5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대적인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는 함경도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 중 최대 인파였는데 이날 일본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시위 군중 5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본 헌병들의 만행에 치를 떤 주민들은 이튿날인 15일, 전날과 같은 5천여 명이 화대장터에 모여 대규모 만세 시위를 벌였다. 동풍신 열사의 부친 동민수는 당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전날 시위 때 동포가 일제의 흉탄에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상에서 떨치고 일어나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시위에 참가한 동민수는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허가면사무로로 행진했다. 하지만 당시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주민들을 괴롭혔던 면장 동필한이 헌병 분견대로 도망치자, 기마헌병은 경찰과 함께 시위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시위대 선두에 섰던 동민수는 피할 틈도 없이 총을 맞고 곧바로 숨을 거두었다.
당시 동민수에게는 동풍신이라는 15살 난 딸이 있었다. 비보를 전해들은 딸은 급히 현장으로 달려가 부친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였다. 딸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한동안 통곡하던 동풍신 열사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헌병의 무차별 발포를 피해 골목에 몸을 숨기로 있던 시위 군중들은 동풍신 열사의 만세 소리에 크게 고무되어 다시 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 달려가 사무실과 면장의 집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던 어린 동풍신 열사는 “만세를 부르다 총살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만세를 불렀다.”고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고문과 괴롭힘 등 감옥생활로 심신이 극도로 지친 데다 모친의 사망소식에 상심한 나머지 동풍신 열사는 식음을 전폐했고, 건강은 날로 악화되어 결국에는 1921년 서대문형무소에서 꽃다운 나이 17세로 숨을 거두었다.
‘북한의 유관순, 동풍신 열사.’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닮았다. 유관순이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면 동풍신은 명천 화대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다. 또 부친이 만세 시위에 참가했다가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을 거둔 것도, 옥중에서 순국한 것도 똑 같다.
그러나 유관순은 기억해도 동풍신 열사에 관해서는 자료 한 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여기에 이윤옥 시인의 동풍신 열사에 관한 시 한 편을 옮기며 작으나마 위로해 본다.

“천안 아우내장터를
피로 물들이던 순사놈들
함경도 화대장터에도 나타나
독립을 외치는 선량한 백성 가슴에
총을 겨눴다

그 총부리 아버지 가슴을 뚫어
관통하던 날
열일곱 꽃다운 청춘 가슴에
불이 붙었다

(중략)


보라
남과 북의 어린 열일곱 두 소녀
목숨 바쳐 지킨 나라
어이타 갈라져 등지고 산단 말인가

(하략)”



▲ 김 지 욱 /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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