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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현대시조 (現代時調) 3대보전(三大寶典)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09.27 14:22 수정 2016.09.27 14:22

요즘 들어서 농작물도 양보다 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먹을거리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질보다 양이 중요하겠지만, 예술세계에는 평범한 만 명의 예술가 보다 한명의 천재예술가가 범용한 만 명보다 절대적으로 우위다. 명작의 산실인 1보다 천재 예술가는 세계사를 다시 쓰는 위력을 발휘하지만 상식적인 미밖에 못 뽑아내는 만 명은 뜻 없는 다수에 불과하다. 고려, 조선, 현대에 걸쳐 오랜 전통을 지녀온 소위 민족시문학이라고 자처하는 시조가, 출생신고한 지 백 년 밖에 안 된 자유시에게 후달리고 있음을, 대부분의 문학 독자들은 절실히 공감할 것이다. 시조단에도 천재시인이 없는게 아니라 대부분의 시조전문시인도 천재를 평재로 긴과하고 있다. 자유시의 선도자 육당 최남선은 현대시조 부흥에도 불씨를 지폈지만 계몽적인 그의 시조는 천재하고는 거리가 멀다. 육당보다 후배지만, 노산 이은상은 시조단뿐 아니라 한국문학의 천재다. 일제치하 조선일보에도 간부직원으로 간여한 이은상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 시조시인으로 우뚝하다. 노산시조집은 자유시, 시조를 통틀어도 당대를 대표하는 주옥 운문집이었다. ‘가고파’ ‘성불사의 밤’ ‘봄처녀’ ‘고향생각’ 등 시조집 전체가 보석꾸러미 자체였다. 노산 이은상의 작품세계는 내용이 쉬우면서도 기발하여 감칠맛이 그거 그만인데다가 서정성도 풍부하여 천재작곡가인 홍난파의 입맛을 동하게 했다. 이은상의 시조는 김동진, 박태준 등 천재성이 두드러진 작곡가들의 단골메뉴가 되고 이 땅 공간에서 노산의 가곡들이 민초들에게 살맛을 더해주었다. 열등한(?) 평객(評客)들은 천재시조 시인 이은상을 3류(!)시조시인 이름 뒤에 노산을 배열하는 우둔을 범하고 있다. 노산의 헬 수 없는 쾌작들이 현대시조 뿐 아니라 현대자유시에까지 자양분이 되고 있다. 초적(草笛)은 초정 김상옥의 첫 시조집으로 부피는 72쪽에 불과하지만 담긴 내용은 보석함이라 할 만하다. ‘백자부’ ‘청자부’ ‘사향’ ‘봉선화’ ‘옥저’ 등 우리 정서를 재현하여 정신적으로 항일운동을 한 애국시조집이다.작고한 박재삼 시인은 김상옥의 삼천포중학교 제직시절 제자로 초청 김싱옥의 시조집 ‘초적’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갱지 노트에 시조집 전부를 배낀 것은 초적의 참된 가치를 증언하는 화끈한 이야기가 아닐까. 초정의 초창기 작품세계는 참신하고 언어감각이 무지개같이 영롱하다. 초정은 보통학교(초등학교)출신으로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건제를 과시, 경남여고, 부산여고에서 재직,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활약하던 김정강은 초청 김상옥의 부산여고 재직시절 수제자였다. 1990년대의 어느해로 기억된다. 문화의 달 행사에 문화예술인에 대한 포상이 있었다. 초정 김상옥은 보관문화훈장을 받게 되고 작품성이나 문단연조로나 가물가물하게 까마득한 후배인 J씨가 초청보다 한 칸 위인 은관문화훈장을 타게 됐다. J씨는 뛰어난 처세가로 늘 역량이 상의 추수를 하는 사계의 달인이었다. 김상옥은 재고할 것도 없이 보관훈장을 내동댕이쳤다. 필자가 봐도 심사위원들의 무지한 폭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문화훈장의 훈격 결정에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상옥의 반골기질은 경남여고 평교사 재직시절, 교장인 서모씨는 아동문학가로 부하직원인 김상옥에게 문학의 운명을 구걸하고 있었다. 서 교장의 초고는 김싱옥의 과감한(?) 첨삭과정을 거쳐야만 지면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평소 초청에게 글 빚을 지고 사는 서 교장은 서울 문교부 출장 때 교사인 김상옥을 모시고 갔다. 서 교장은 가방도 없이 서울 나들이를 갔지만 김상옥은 서울역에 도착하면 자기가방을 서 교장에게 주어 대신 들고 다니게 했다. 평교사로서 교장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것도 감지 득지하는 세상에 평교사 김상옥은 서 교장에게 되레 가방 수발을 예사로 시키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 땅의 김상옥은 훈장을 반납했고 프랑스의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을 반납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런 반골들이 건재하기에 세상은 살맛이 나는 것이다. ‘현대시조선총’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한생을 마감한 월하 이태극 교수가 자료를 수집하고 엮은 1950년대 말에 나온 유일한 현대시조전집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태극이 엮은 ‘현대시조선총’은 김천택의 ‘청구영언’과 비견할 만하다. 이태극 교수는 중후한 임품을 지닌 훌륭한 인격자로 현대시조의 증흥을 위해 여러 뒷바라지로 공헌을 한 한국현대시조의 고마운 후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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