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기고

행복의 밑천은 소 네 마리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0.31 19:11 수정 2018.10.31 19:11

전 문 석 경위문경경찰서 점촌파출소 순찰3팀장
전 문 석 경위 문경경찰서 점촌파출소 순찰3팀장

지난 주말 집안의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명동성당에 다녀왔다. 혼인 미사는 그곳의 프란치스코 홀에서 진행됐다.
혼인 미사를 집전한 사제(신부)는 강론 말씀을 통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고결한 모습의 신랑 신부가 지금의 이 숭고한 고백을 평생 간직하기를 바라면서 ‘행복의 밑천’으로 소 네 마리를 준다고 하면서 잘 길러 평생토록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였다.
그 소 네 마리는 이렇다. ‘내가졌소. 당신이 옳소. 당신 맘대로 하소. 나를 용서하소.’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는 말이다. 이 소 네 마리만 제대로 기른다면 정말 부부간의 싸움은 멀어진다.
부부지간의 가정폭력이 사회적인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말다툼으로 시작해 폭력으로 이어지고 끝내는 ‘사네 못 사네’, ‘죽네 사네’싸우며 이혼직전까지 갔던 가정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런 부부에게는 소 네 마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이 위태로워진 외국의 한 부부는 젊은 시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통해 예전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으면 계속 살고, 그렇지 못하다면 미련 없이 헤어지기로 약속 했다. 그들은 눈이 많이 내리는 히말라야 퀘벡 산맥을 찾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눈이 많이 내려 나뭇가지에 두껍게 쌓이면 아래로 구부러지고 쌓인 눈이 떨어지는 삼목 나무를 보았다. 신기하다는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내 고집만 부릴 줄 알았지. 당신 의견을 받아들이고 양보할 줄을 몰랐소. 내가 구부러질 줄 몰랐기 때문에 서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거였소. 미안하오. 여보.’ 아내도 말했다. ‘아니에요. 나 역시 당신에게 지지 않으려고만 했던 걸요. 우리 이제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구부러질 줄 아는 부부가 되기로 해요. 그럼 적어도 고집만 피우다 부러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 부부도 뒤 늦게 깨달은 것은 바로 소 네 마리의 개념원리이다. 부부싸움에 앞서 처음부터 그 앞에서 약해지고 작아졌다면 그에게 그런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 또한 스스로 약해지고 작아진 나를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부딪치는 상황에서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내가졌소.’하면서 자신을 낮추면 오히려 더 큰마음을 지닌 사람이 된다. 그리고 약해지고 작아져도 괜찮음을, 강해지고 큰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됨을 배우게 된다.  
사랑은 가짐이 아니라 베풂이다. 사랑은 나를 온전히 내어 너에게 내어줌으로써 나를 또 하나의 너로 만드는 것이고, 너를 나로 채움으로써 너를 또 하나의 나로 만드는 것이다.
이걸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집집마다 소 네 마리만 키우면 행복해 집니다.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