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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필귀정(事必歸正)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2.16 18:52 수정 2018.12.16 18:52

김 시 종 시인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거짓말은 발이 짧다. 그래서 얼마 못 가 진실에게 덜미가 잡히고 만다. 거짓말은 꼬리가 길어 진실에 꼬리가 잡히고 만다.
학문의 최고 가치는 진리다. 진리를 외면한 학문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 필자는 중진시인이면서, 역사학에 발을 깊숙이 담근 올곧은 사학도(史學徒)다. 제대로 수업을 한 고참시인이 되어 현대어에만 이력이 난 게 아니라, 웬만한 고어(古語)에도 달통(達通)한 경지에 닿아 있다.
특히 마을이름(洞名)의 유래는 아무리 멀리 떨어진 마을이라도 우리나라의 지명(地名)쯤은 훤히 꿰고 있다.
이런 필자(나)를 화(화딱지)나게 한 것은 지금부터 30년 전 경북도교육청(당시 이강호 교육감)이 펴낸 지명유래에 사실과 다른 조작이 없는 시·군이 없을 정도로 내용이 거짓된 부문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양식(良識)을 갖춘 인사들을 분노케 했다.
다른 곳은 그만 두고, 당시 문경군(지금 문경시)점촌읍 영신리(永新里)를 예로 든다. 영신리의 자연부락은 수통매기(막이), 한신마, 동채마(동침마)의 셋으로 이뤄졌는데, 한신마를 예로 들겠다.
점촌읍 영신리는 점촌초등학교 ○교사가 조사하여 집필한 걸로 되었는데 평소 역사와 지리에 조예도 없으면서 상부의 지시로 힘에 겨운 부역(?)을 했는데 동네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자기 동네 ‘한신마’가 무슨 뜻인가 아는 사람이 없어 조사 담당교사는 마을 유래란을 공란(빈칸)으로 둘수 없어 얼떨결에 급조(急造)한 것이 어느 해 농악대회에서 한 사람이 신나게 잘 놀아 ‘한신마’로 마을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점촌초등학교 담당 교사의 진술은 허위요, 조작이다. 사람이란 강박을 당하면 못할 거짓말이 없다. 학문을 하는 방법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잘 아는 사람(전문가)에게 물으면 된다.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 학문을 할 수 없다. 점촌국교 바로옆에 사는 필자(나)에게 ‘한신마’의 유래를 물었더라면, 정답(正答)을 0.5초안에 알려주었을 것이다.
‘한신마’는 한자로는 영신리(永新里)라 적는다. 마을이름이 영신(永新)으로 바뀌기 전에 곶신(串新)이었다. 영신리 옆으로 흐르는 강이름이 영강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엔 ‘영강’이 곶내(花川)으로 적혀있다. ‘곶내’가 ‘영강’으로 바뀌면서 마을 이름 곶신(串新)이 영신(永新)이 된 거다. ‘한신마’란 영신(永新)을 우리말로 풀어 쓴 것이다. ‘한신마’의 ‘한’은 크다(大또는 永)는 뜻이, 신은 새신(新)이요, 마는 마을의 준말이다. ‘한신마’-‘큰 새 동네’란 뜻이다. 한신마(영신리)는 영신평야(큰들)을 끼고 있는 마을인데, 농악(풍물)의 전통은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전혀 없다는 심층연구 결과가 청천 백일하에 밝혀졌다.
가까운 중신기마을(모전2동)은 20세기 초부터 농악(풍물)이 문경군에서 가장 성했다. 필자(나)의 친구 김무조 학형은 영신리(한신마)에 50년 이상 살았지만, 풍물놀이(농악)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화끈하게 증언했다. 모전들 노래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획득한 젊은 들노래꾼 금명효(현역 경사)씨도 영신리(한신마)엔 농악의 전통이 전무(全無)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앞으로 문경 시민 중엔 한신마(영신리)의 유래를 확실히 알고, 구태의연한 착각하는 인사가 없어야 할 것이다.
(2018. 12. 6 22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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