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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에의 제로섬(zero sum)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8.12.26 19:18 수정 2018.12.26 19:18

장선아 교수
경북과학대학교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하나의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서양 연극 중에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한 ‘단지 15분’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그 연극의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심사에서도 극찬을 받았으며, 이제 학위 받을 날짜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밀 검사 결과 시한부 삶의 불치병환자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그것도 남은 시간은 ‘단지 15분’이라는 것이었다.
망연자실 하는 동안 5분이 지나가 버렸다. 그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는데, 억만장자였던 삼촌이 방금 돌아가셔서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으라는 통보였다. 또 5분이 지나갈 무렵 또 다른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는데,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된 것을 알려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남은 5분이 지날 때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 승낙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어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전 KBS1의 ‘KBS스페셜-앎, 여자의 일생’을 시청한 적이 있다. 암4기 엄마의 3년 투병기로 간절한 삶의 이유와 깨달음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녀는 둘째 딸이 백일을 지날 무렵,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고, 치료희망을 가지지는 못할지라도 삶을 포기하기에는 책임져야 할 엄마로서의 숙제가 있어, 두 딸을 위해 조금만이라도 더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침대에 누워만 있는 엄마의 모습만을 딸들이 기억할까봐 그래도 교단에 선 엄마로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복직하여 8개월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도 방영되었다.
눈물이 났다. 필자가 앓았던 그 병이었다. 필자가 몇 개월 전 암수기 공모에서 특별상을 받을 수 있게 한 내용의 줄거리가 떠올라 더욱 실감하였다. 필자는 그 때 “암은 앎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방송의 제목도 “앎”으로 표현되어 깜짝 놀랐다. 암은 알아야 극복할 수 있으며, 오늘 지금 평범하게 살아있는 일상의 삶이 진정으로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확실히 깨닫게 하는 수작이었다. 그녀가 맞이한 죽음에는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가슴이 아팠다.     그저께 다리를 접질리어 병원엘 갔다. 미리 예약을 해 둔 터라 대략 몇 십분 쯤 뒤면 진료가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또 다른 일을 계획해 두었었다. 그런데 한 시간가량을 더 기다린 후에야 겨우 의사의 진찰을 받게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여러 가지가 불만스러웠다. 이럴 바에야 예약을 뭐 하러 받느냐 부터 대학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에서의 예약은 거의 정확한 시간대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둘걸 하는 후회하는 마음이 가득 들었다.
막상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내 생각이 바뀌었다. 상세한 쌍방향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에서의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편리함과, 작은 병원에서의 예약을 해두었음에도 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 상세하고 충분한 의사와의 대화는 서로 맞바꾸어도 될 만큼 보상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로섬(zero sum)이 떠올랐다. 그 까닭은, 위 ‘단지 15분’은 허망하게 죽음을 앞두고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식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이고, ‘KBS스페셜’에서도 단순히 아까운 죽음만을 조명하려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며, 병원에서의 진료대기시간도 단순히 그 시간의 짧고 김이 환자의 불만을 좌우하지 않음을 알게 된 이유에서이다.
‘단지 15분’은 시간적으로 오래 살지는 못할지언정, 가치 있는 짧은 삶의 업적이 그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고, ‘앎’은 그 아까운 죽음이야 무엇으로 견줄 바는 아니지만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던진 삶의 크나큰 교훈은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을 기념비적 의미를 선사하고 있으며, 병원에서의 한 시간을 더 기다린 불만은 그 만큼 의사와의 상담시간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사례 등은 모두 “하나를 잃으면 다른 곳에서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어쩌면 제로섬과 꼭 닮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올 한 해도 어느덧 며칠만을 남겨두고 있다. 각자 삶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때로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으로, 때로는 힘겹고 지친 순간으로 보내왔던 날들은 분명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소중함 짓하다.
‘온전히 잃는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삶에의 제로섬(zero sum)’은 다가올 새해맞이의 또 다른 설렘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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