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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카콜라와 펩시의 게토레이 전쟁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1.31 19:21 수정 2019.01.31 19:21

김 화 진 교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퀘이커 오츠(Quaker Oats)는 1901년에 네 개의 오트밀 회사들이 합병해서 탄생했다. 회사 로고에 퀘이커 교도 한 사람이 나온다. 1600년대에 펜실베이니아 식민지를 개척한 퀘이커교는 신도들이 기도할 때 몸을 떤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 회사는 사실 퀘이커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냥 정직성을 회사의 사업방침으로 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 퀘이커를 코카콜라가 2001년에 인수하려고 했다. 퀘이커의 게토레이가 스포츠음료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어서다. 코카콜라의 파워에이드는 10% 안팎에 그쳤다. 물론 독점금지 때문에 게토레이를 손에 넣으면 파워에이드는 매각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스포츠음료 시장 1위가 더 탐났다.
그런데 그 한 해 전인 2000년에 퀘이커는 펩시(PepsiCo)와 회사 매각협상을 한 적이 있다. 이 협상이 잘 풀리지 않자 코카콜라가 경쟁자로 등장했던 것이다. 경쟁자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펩시는 가격을 높일 생각이 없어서 코카콜라가 게토레이를 손에 넣게 되었다. 코카콜라는 158억 달러를 불렀다.
코카콜라가 이렇게 비싼 가격에 퀘이커를 매수하기로 하자 코카콜라의 주가가 하락했다. 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코카콜라 경영진은 딜을 진행하려고 했다. 그러자 코카콜라의 이사회가 제동을 걸었다. 퀘이커는 결국 펩시가 130억 달러에 인수했고 코카콜라의 주가는 회복되었다.
이 사건은 경영진이 추진하려던 M&A를 주주들이 부정적으로 보았고 경영진과 주주들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이사회가 사실상의 거부권을 행사한 이례적인 사건이다. 코카콜라의 주주들이 이 딜을 좋아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게토레이 외에 퀘이커가 가지고 있는 시리얼, 팬케이크, 스낵 등 여러 식품사업이 음료수 회사인 코카콜라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코카콜라의 퀘이커 인수시도는 전략에 기반을 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숙적 펩시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인 것이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요즘은 잠잠하지만 한때 펩시는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실전같은 광고 전쟁을 벌였다. 마이클 잭슨도 동원되었었다. 코카콜라는 수성에 진땀을 뺐다.
방어적 M&A는 종종 일어나지만 일반적으로 위험하다고 인식된다. 방어적 M&A는 경영진이 회사의 독립성보다는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서둘러 감행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경우 대개 거래조건이 열악하다. 급하기 때문이고 적이든 친구든 상대는 급한 사정을 잘 안다.
이사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영진과 주주들 사이에서 조정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강하고 실적이 탁월한 경영자나 오래 함께 일한 경영자가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때 이사회가 견제하기는 쉽지 않다. 코카콜라 이사회가 퀘이커 인수에 제동을 걸었던 것은 17년간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전설적 CEO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사망 후 새로 구성된 경영진과 아직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않았던 상황이어서 가능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사례를 굳이 국내의 상황에 대입해 보면 3세, 4세로 경영승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국내 기업에서 이사회가 승계 과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주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온갖 압력 아래 있는 신세대경영자들은 조급하고 과하게 공격적이 될 수 있다. 반면 기관투자자가 다수인 대형 상장회사의 주주들은 전체로서 거의 집단지성체다. 진리를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명하게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평소 변덕이 심하고 사소한 정보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여도 중요한 사안에서는 집합적으로 장기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잘 아는 것이 주주들이다.
주주들은 종종 ‘정무적인’ 결정을 해야하는 경영진과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단기적 이익 위주로 움직이는 활동주의 헤지펀드에 반드시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이사회는 이런 주주들과 경영진 사이에서 노련하고 신중한 균형추 역할을 수행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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