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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혼여’와 ‘진인사’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2.13 18:30 수정 2019.02.13 18:30

장 선 아 교수
경북과학대학교

명절후유증을 대신해 나 자신에게 줄 선물로 요즈음의 대세인 ‘혼여’를 해보고 싶었다.
‘혼여’는 ‘혼자서 하는 여행’을 일컫는 말로, 젊은이들이 혼자서 조용히 하는 여행으로, 말하자면 여럿이 하는 관광차원의 여행이 아니라 혼자만의 조용한 여행을 뜻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그것을 막상 실제행동으로 옮기기엔 무척 망설여졌다.
왜냐하면 젊지 않은 나이에 여자로서 낯선 곳으로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마음이야 설레는 일이지만 막연히 두렵기도 했고 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설렘이 이겼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남해 행 길을 나섰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어묵꼬지 하나로도 배부를 만큼 기대와 설렘이 충만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문득문득 바라다 보는 창밖의 풍경은 장거리 운전의 피곤함을 씻어주었다. 도착한 숙소에서의 밖 풍경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도회지에서의 팍팍했던 삶의 피곤함을 보상해주기에 충분했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권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만권(讀書萬卷) 행만리로(行萬里路)’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라’라는 의미로, 한 곳에 머물러 하는 공부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만, 올바르게 익히고 생각의 폭을 넓히며 큰 뜻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 길을 다니면서 얻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은유한다.
책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여행이라는 수단으로 더욱 심화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일 것 같다.
일본에선 ‘자식을 사랑한다면 여행을 보내라’고 한 것이 그런 뜻일 것이고, 서양에서의 ‘여행하는 자가 승리 한다’는 말도 이것이 주는 많은 장점을 표현하는 속담일 것이다. 삶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의 많은 경험 중에서 여행만 한 것이 없다고 여러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혼자서 보내는 여행지에서의 밤은 상상 이상으로 의미 있었다.
생애 처음의 ‘혼여’였기에 나는 내게 정성스레 저녁을 차려주었다. 때마침 창밖 고즈넉한 달빛은,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을 오히려 아련한 추억으로 변하게 했고,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했다.
문득 ‘진인사(盡人事)’가 떠올랐다. 혹시라도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런 나의 각오가 잊혀 지지는 않을까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을 하도록 채찍질하며 이 말을 오래 오래 되새겼다.
모든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생각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열매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 그런 열매의 단맛은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열매를 주기도 하겠지만 그 열매를 받은 이가 진정으로 애쓰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열매의 주는 진정한 의미는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대천명(待天命)’이라는 것은 우연히 누구에게나 문득 주어지는 평등한 기회임은 틀림없겠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선사하는 열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다음날의 일정은 더욱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날 따라 유달리 잔잔한 바다가 그랬다. 인터넷상으로 추천된 ‘맛 집’과 카페 또한 그런 대접을 확인해 주었다.
바다는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한 번도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않는 무언의 겸손을 가르쳤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그런 바다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맛집’에서의 아늑함은 굳이 장황한 설명 없이도 그 자체로 여행객의 마음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때마침 화사하게 비추는 햇빛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의젓한 선물이었다.
한참을 달려 찾은 카페 또한 나를 반겨주기는 마찬가지였다. 낯선 곳에서의 작은 어색함은 펼쳐놓은 노트북이 깨끗이 닦아 주었다. 돌아오는 길 석양으로 물든 바다의 모습은 차라리 나의 뇌 새김이라 할 만큼 강렬한 아름다움을 내게 선사하였다.
이렇듯 나의 ‘혼여’는 매우 가치 있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깨달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인사’를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모든 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 온 사람들에게 베푸는 선물임을 실감하였다. 짧은 일정에 비해 많은 것을 시사하는 가르침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한 후 스스로에게 베푸는 작은 선물이 때로는 큰 행복을 안겨준다는 진리를 터득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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