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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기획특집] 안동의 전통사찰을 찾아서(3)

조덕수 기자 기자 입력 2019.03.11 20:45 수정 2019.03.11 20:45

봉황이 내려 앉아 알을 품었다는 전설의 터 -금계산 봉서사(鳳棲寺)

봉서사 전경
봉서사 전경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유교적인 문화가 깊이 뿌리 내린 곳이지만, 조선시대 유교가 정착되기 전부터 불교문화가 꽃 피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는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맥을 이어 온 것은, 민중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안동 지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삼국시대인 5~6세기경이다. 안동 지역의 불교는 삼국시대에 정립된 뒤, 통일신라 이후 7~9세기까지 의상이 도입한 화엄종의 개척지로서의 불교, 통일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건국하기까지의 시기인 9~10세기에는 미륵신앙 불교, 고려 중·후반기에는 귀족 불교에 대한 변방의 토착 불교, 조선시대에는 탄압을 받으면서도 성리학의 본거지에서 버틴 토착 불교, 일제강점기에는 해방을 지향하는 불교로 이어져 왔다.
안동의 사찰들은 예로부터 봉황(鳳凰)과 관련 깊은 여러 가지 전설을 지니고 있다. 봉황은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상상의 동물로 우리네 풍습, 문양, 풍수, 전설 등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안동에는 봉황이 머물러 사찰이 창건됐다는 봉정사(鳳停寺)를 비롯해 봉황이 알을 낳았다는 영봉사(詠鳳寺), 봉황이 잠시 깃들었다는 봉서사(鳳棲寺) 등의 사찰이 있다. 안동과 영주의 경계가 되는 산 속의 아름다운 전통사찰 금계산 봉서사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역사
봉서사(鳳棲寺)는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764번지 금계산(금학산)(金鷄山, 金鶴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말사 안동에서 영주 방면 5번 국도로 가다가 안동시와 영주시의 경계인 영주사 평은면 지산리 왼쪽으로 난 산길을 들어간다. 이 길로 약 800m 가량 오르면 금계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한 봉서사에 닿는다. 금계산은 해발 500m인데 산세가 비교적 크고 웅장하다.
봉서사는 7세기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것이 거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과 성보문화재를 통해 본다면 조선시대 후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 유래와 전설
영부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한 의상대사(625-702)가 도력으로 종이 봉(鳳)을 만들어 날려 보냈다. 봉황은 높이 날아 부석사에서 200여 리 떨어져 있는 학가산에 도착하였다. 종이 봉황은 학가산의 서쪽 산록에 살포시 내려 앉아 알을 까니, 그곳에 절을 짓고 영봉사(詠鳳寺)라 이름을 지었다. 영봉사 터는 금계포란형의 좋은 지형의 땅이다.
그렇지만 알을 깐 봉황이 이곳에 머물지 않고 새끼들이 성장하게 되자 더 넓은 세상으로 옮겨가게 된다. 봉황은 새끼를 데리고 더 넓고 안락한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날다가 금계산 자락에 살짝 내려앉았다.
숲이 울창하고 주변 환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땅을 찾게 되니 그곳에 다시 절을 짓고 봉황이 깃들었다고 하여 봉서사(鳳棲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곳 봉서사에서도 종이 봉황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떠나게 되었는데, 산세가 부드럽고 밝고 고운 토산(土山)인데다 온 산에 솔숲이 울창하고 나지막하면서도 주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천등산에 머물게 된다. 봉황이 머문 곳이라 하여 그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학가산(鶴駕山) 둘레에 있는 여러 사찰에 대해서는 서로 연관된 전설이 얽혀 있다.

◇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봉서사가 자리 잡은 금학산은 해발고도가 800m 조금 못되는 높이지만 산세가 웅장하고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다. 5번 국도에서 800m정도 산을 오르면 정상 조금 못 미쳐 넒은 터가 눈에 들어온다. 오르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지만 노폭이 좁아 초보운전자나 여성운전자는 운전하기가 힘이 들고 불과 몇cm만 잘못 핸들을 틀어도 큰 사고가 날만큼 위험하니, 봉서사를 찾는 참배객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봉서사는 옛날에는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그때 지은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는데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공터가 남아 있다. 현재 봉서사는 보광전, 응진전, 포란루, 산령각, 요사채로 이루어져 있고 해우소를 잘 지은 것이 보이는 조그만 사찰이다. 사찰 경내는 약 2m 높이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축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건축물의 배치는 포란루를 기준으로 정면에 보광전이 있고 보광전의 오른쪽에 응진전이 있으며 좌측에 요사 1동이 배치되어 있다.
■ 보광전(普光殿)
봉서사의 중문인 포란루와 마주보는 법당인 보광전은 사찰 중정보다 2m50cm정도 높게 쌓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1층 기단을 놓고 자연석 주초석을 사용하여 기둥을 세웠다. 석축 중앙의 7계단을 통하여 법당에 오를 수 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치마 팔작지붕형식을 하고 있다. 법당의 전면에 문을 설치하였는데 중앙어간은 분합문이고 좌우 협칸에는 외문이 짜여있으며, 여닫이문이 아닌 들어열개 구조로 법당처마에 달려 있는 걸쇠에 걸어서 개방하도록 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3칸 문은 모두 궁판이 있는 띠살문이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어간이나 우측면에 있는 띠살문을 이용한다. 우측면의 평주에는 홈을 파서 끼운 두께 5cm, 너비 25cm 정도 크기의 판이 끼워져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땅바닥에 놓지 않고 이곳에 올려놓은 후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 공양을 부처님 전에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에 정성을 다하고 깨끗하게 올려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는 자혜로움이 배어 있는 것이다. 법당 내부에는 90cm 높이의 불단을 전면에 설치하고 불상을 모시고 있다. 좌우에 협시보살을 모시고 있지 아니하다. 금고는 일명 금구(禁口) 또는 반자(飯子)라고도 부르는데 쇠붙이로 만든 북과 같은 것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금고는 법당 좌측 문에 결려 있다. 형태는 둥근 대야 모양으로 생겼는데 한쪽만 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넓은 구연부에 전이 달려 있어서 끈으로 묶어서 걸 수 있도록 하였고 칠 수 있는 판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 포란루(抱卵樓)
봉서사의 중문으로 이용된 듯한 2층 누각이다. 보수하기 이전에는 누각이 기울어져 있었고, 비가 새서 비닐로 덮어두고 있었다.
식수마저 없어서 아랫마을에서 날라다 먹는 열악한 형편이었는데 지금은 말끔히 단장되어 보기가 좋다. 포란루는 대정 7년 2월 7일에 기둥을 세워 동년 2월 17일에 상량하였다는 기록이 대들보에 적혀 있어 세운 연대(1918년)를 알 수 있다. 이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크기이며 맞배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다.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설치되지 않아서 그런지 오랜 세월에 많이 퇴락한 것을 잘 보수를 하였다. 누를 지나는 방식으로는 누 밑을 관통하여 들어가는 누하 진입과 누의 좌우로 돌아 들어가는 우회진입 방식으로 구분하는데 봉정사 덕휘루의 경우는 누하 진입 방식뿐이고, 봉서사는 두 가지를 다할 수 있다.
옛날에는 누하를 막아서 창고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한쪽은 방으로 사용하는 듯 말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다. 기둥 크기는 누상 기둥에 비하여 누하주의 굵기가 더 굵다. 누 위로 오르는 게단은 우측면 중정 쪽에 있는 사다리를 통하여 누에 오른다. 누의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입면은 좌우 측면이 판벽으로 막혀 있는 구조이다. 앞뒤만 개방하여 법당을 바라볼 수 있고 전면으로 발아래 펼쳐지는 전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난간은 우주와 평주를 연결하여 기둥에 난간대를 붙였다.
■ 응향각(凝香閣)
응향각은 자연석 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시멘트를 사용하여 보수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이며 우측 1칸은 부엌으로 사용하고 좌측 2칸은 방으로 꾸며져 있다. 방 앞에는 반 칸의 퇴를 놓았다.
■ 산영각(山靈閣)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으로 맞배지붕에 풍판은 설치되지 않았다. 내부에는 62cm 크기의 사닌상이 모셔져 있고 가로 75cm, 세로 89cm 산신탱화가 걸려있다.
■ 요사(寮舍)
정면 4칸과 우측면 2칸, 좌측면 1칸의 특이한 구조를 한 건물로서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좌측면 1칸은 부엌으로 이용하고, 나머지 3칸은 방으로 사용한다. 건물 뒷면의 중앙 2칸에 아궁이를 설치하고 봉당 1칸을 내어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아직 지은 지가 오래되지 않아 단층은 하지 않았고 이곳에 다실이 있는 듯하다.
■ 해우소
봉서사 서편 끝에 새로 지은 해우소가 있다. 겉모양은 전통 고가 형식이다.

◇ 봉서사의 자연유산
봉서사로 올라가는 길은 외길로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나무가 우거진 길은 차량 두 대가 교차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안동과 영주의 경계되는 자리에 고스란히 터를 잡은 비구니 사찰 봉서사는 단아하고 깨끗하며 오밀조밀하다. 대부분의 전각이 조선 후기에 중건한 사찰이다.
봉서사에서 바라본 전망은 낮은 산이 겹겹이 쌓여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어서 장관이다. 서쪽으로 저물어 가는 해를 따라 형형색색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도반과 더불어 차 한 잔을 나눈다면 극락이 따로 없을 듯하다. 절 마당에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화분과 수많은 야생화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절 마당을 보면 작은 수목원과 같다.
봉서사 경내에는 예쁜 야생화들이 많다. 산자고, 자란, 거미바위솔, 거미줄바위솔, 범부채, 노루오줌, 노루발 수수꽃다리 등 수백종의 꽃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가 솔솔할 듯 싶다. 지금은 비구니 도량으로 어린이 포교에 관심을 가지고 척박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도 지역 불자들의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부처님 오신날 봉축
    봉서사 산사음악회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고 지역주민과 사찰을 찾는 불자들에게 즐거움과 아름다운 음악을 전하기 위한 산사음악회를 봉서사 전정에서 매년 개최한다. 이 행사는 8년 전부터 안동, 대구지역에서 사찰음악활동으로 봉사하고 있는 지역 가수들이 출연하여 봉서사를 찾는 신도들에게 석가탄신일을 맞아 아름다운 선율의 음성공양을 실시하여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봉축하고 온누리에 평화와 자비광명이 충만하기를 기원함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포교활동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불우이웃돕기, 무료급식, 퇴직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각종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 승민 스님(주지)과의 만남
봉서사 주지 성민 스님은 봉서사에 온지 올해로 14년째를 맞는다고 했다. 확 트인 전망의 봉서사는 금계(봉황)날개가 웅크리고 앉아 좌청룡 우백호 포란을 품었으며, 동남방 해맞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신도들과 성지순례 방생을 여러 차례 다니며 느낀 점은 갈수록 노령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찰에 신도들이 오도록 가만히 기다리면 안 된다. 불자에게 쉽게 다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쉽게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봉서사에 오면 사찰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 도량을 예쁘게 꾸미고 넓히고, 환경을 정리해 신도들이 와서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포교에 정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덕수 기자 duksoo1144@hanmail.net

봉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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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전
보광전
보광전 앞 탑
보광전 앞 탑
응향각
응향각
포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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