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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기획특집] 안동의 전통사찰을 찾아서(8)

조덕수 기자 기자 입력 2019.03.28 20:11 수정 2019.03.28 20:11

와룡산 서쪽에 자리한 유하사(遊夏寺)

해탈문
해탈문

 

◇ 유하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은사의 말사인 유하사는 1897(丁酉)에 창건하였다. 창건부터 현재까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단계는 최초 창건한 월선보살(月仙菩薩)의 초기 건립 과정이며, 두 번째 단계는 무심대사(無心大師)의 포교활동 시기이고, 세 번째 단계는 1969년 무심대사의 뒤를 이은 묘행(妙行)스님의 중흥기로 나눌 수 있다. 유하사는 풍수지리설로 보면 행주형(行舟形)에 속하는 길지다. 사찰이 위치한 와룡산은 용이 누워있는 형국을 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용이란 신령스러운 영물이며 바람과 비, 구름을 몰고 다니며 무궁한 풍운조화를 부리는 동물로 상징된다. 따라서 용은 물과 친숙하고 물에서 노닐다가 승천하여야 적당한 비와 바람과 구름을 주어 인간 세상이 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하사의 주변 지형은 용과 관련된 여러 가지 풍수지리의 비보로서 조성이 되었다. 사찰 이름도 놀 유, 여름 하를 써서 사찰명으로 잘 쓰지 않는 특이한 명칭을 쓰고 있다. 이것도 이곳의 지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와룡산의 형국이 용이 누워있는 형국이므로 지기가 좋지 않아, 용이 힘차게 움직이고 활발하게 활동하여 승천할 수 있도록 사찰 경내의 세 곳에 우물을 파서 용이 활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놀 유 자에 여름 하 자를 써서 유하사라 이름 짓고 용이 승천하고 땅의 복록을 불어, 지기(地氣)를 강하게 해줌으로써 마을과 사찰이 번영할 수 있다고 유하사라 이름 붙였다.
 
◇ 유래와 전설
유하사는 월선보살에 의해 창건되었다. 정유년 8월에 법당 3칸을 짓고 미륵불을 모시고 삼정산 유하사(三井山 遊夏寺)라 명하였다.
월선은 신령스러움이 있어 기도로 많은 병자를 치료하였고, 소망을 비는 신도들이 소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어 신도가 많이 늘어나고 사세를 불려나갔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들은 오히려 모두 일찍 죽게 되는 고난을 겪는다. 이는 자신의 업보를 딛고 원력으로 기도하면 신도들은 오히려 소원성취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월선보살의 뒤를 이은 무심대사는 산천을 헤매고 방랑하다 이곳에 닿게 되고 월선의 보살핌으로 1925년 을축년에 출가하게 된다. 무심대사 때에는 법당을 중수하고 요사인 중향각을 신축하게 된다. 무심대사의 법륜에 의하면 유하사는 많은 신도들이 찾아들게 되니 사찰의 세는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무심대사가 1960년 열반에 들게 되자 급격히 신도들이 떨어져 나가고, 1969년 묘행스님이 유하사로 들어오기 전 9년 동안 폐사되게 된다. 묘행은 1969년 3월 법당을 5칸으로 중수하고 해탈문과 요사인 동선당을 신축하였다. 또 경내 중정에 약왕보살(藥王菩薩)을 세운 후 대웅전 신축과 선방을 신축하였다.
 ◇ 건축물의 구조와 배치
살앞 마을에서 유하사로 들어가는 길 좌측 산비탈에 월선보살 기녀비와 무심선사 부도비·부도가 자리잡고 있다. 부도는 시멘트 기단을 놓고 그 위에 높이 137cm 정도 크기의 부도를 올리고, 1987년 12월 6일 ‘무대선사지탑’이라는 명문을 적어 세웠다.
이 부도를 지나 200m 정도 들어가면 유하사의 법기헌(法起軒)을 마주한다. 법기헌은 평소에 문이 닫혀 있어 안을 잘 들여다 볼 수가 없다. 그 바로 앞에 해탈문(解脫門)이 있고 해탈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선방이 새로 신축되었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대웅전, 용화전이 배치되어 있다. 옛날에는 대웅전 옆에 요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헐리고 서편으로 넓은 대지를 확보하여 그곳에 요사를 지어 공양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 대웅전(大雄殿)
이 건물은 오래 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은 아름답고 거룩하게 완공되어 있다. 대웅전은 서남향의 좌향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110cm 정도 높이의 다듬돌을 기초 위에 세웠다. 기단중앙과 좌우 측면에는 법당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놓여 있다. 중앙계단의 난간에는 법륜이 화강석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 계단의 난간에는 옴 자가 쓰인 화강석이 올려있다.
옴 자는 사찰의 재앙을 막아 법통을 이어가고 사찰 수호기능을 한다. 지붕은 겹치마에 팔작지붕이며 용마루 양 글에 올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불교에 있어서 용은 기린, 봉황, 거북과 더불어 네 가지 신령스러운 영물로 삼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비와 바람을 마음대로 부리며 하늘과 바다를 자유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용이야 말로 부처님을 수호할 수 있는 영물이기에 법당의 안과 밖에 많이 장식한다. 공포는 다포양식을 사용하였다. 정면 5칸 중 어칸이 조금 더 큰 규모이고 좌우 두 칸씩의 협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칸에는 꽃살문이 아름답게 조각된 여닫이문이 나 있다.
전면의 중앙 기둥에는 바깥쪽에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안쪽에 몸통과 꼬리부분이 조각되어 있어서 장중함과 위엄이 서려있다. 법당의 전면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있다.
법당의 내부 중앙에는 175Cm 정도 높이의 불단을 조성하여 부처님을 모셨고 양측 면에는 130Cm 정도의 높이로 2층 불단을 설치하였다.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을 가운데에 봉안하고, 좌측에 문수보살과 우측에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실천적 특성이 강조된 보살이다. 문수보살은 반야의 가르침을 선양하는 지혜의 상징으로 석가모니의 지덕과 체덕을 맡아서 석가모니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돕기 위한 보살이다.
보현보살은 시방세계에 널리 나타나는 방편을 갖고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석가모니불의 이(理), 정(定), 행(行)의 덕을 맡은 보살로서 석가모니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도우며, 특히 중생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덕을 갖추고 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탱화로도 봉안되는데 이때 문수보살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에 비해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탄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더불어 석가모니불의 협시불로 석가삼존을 이룬다.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가구가 은폐되어 있으며 불단 위 닫집은 보개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바닥은 마루 바닥이다.

■ 용화전(龍華殿)
대웅전의 동쪽에 위치한 용화전은 미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미륵불은 도솔천이라는 하늘나라에서 보살로 있으면서 56억 7천만년 뒤에 이 세상에 나타나, 못다 구제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이다.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다가 모든 행과 도를 원만히 닦아서 미래에 성불하여 부처가 된다는 약조를 받고 도솔천에 올라가 하늘나라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 미래불인 미륵불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하는 뜻으로 미륵불을 안치한 전각의 이름을 ‘용화전’ 혹은 ‘미륵전’이라 한다.
용화전의 좌향은 서향이며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크기이다. 초기 창건 시 3칸 크기의 건물을 중창하여 현재의 모습이다. 자연석을 쌓은 기단 위에 시멘트로 마감한 후 자연석 주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팔작지붕에 접처마이다. 용화전의 내부에는 1m 크기의 미륵불을 가운데 모시고, 그 우측에 아미타불을 가운데 두고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우측에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다. 미륵불의 좌측에 산신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건물의 전면은 크기가 같은 5칸의 규모에 띠살문이 설치되어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좌우 측면 1칸에도 띠살문이 있다. 용화전의 기둥에는 주련이 써져 있다.
 
■ 해탈문(解脫門)
유하사의 사실상 산문인 이 해탈문은 그 문을 통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모든 번뇌와 미륵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상징적인 문이다. 마음 속에 가득한 탐욕과 집착을 없애고, 자유로운 해탈의 경지와 지혜에 의해서 어리석은 무지에서 벗어나, 만물의 실상을 똑바로 직시하며 정확한 판단으로 부질없는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라는 말이다.
해탈전의 크기는 2칸의 크기의 규모이다. 좌측 1칸은 출입하는 문으로 사용하고 우측 1칸은 방으로 꾸며져 있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문에는 금강역사가 이 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 모든 번뇌와 어리석음, 고난을 베어 넘듯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의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다.
 
■ 법기헌(法起軒)
이 건물은 무심대사가 이곳에서 기도한 후 큰 덕을 쌓고 유하사를 중창할 수 있는 틀을 잡은 곳이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크기인 이 건물은 좌측 1칸에는 무심대사의 진영이 걸려 있다. 그 크기는 가로 71Cm, 세로 107Cm이다. 우측 1칸에는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 탱화가 봉인되어 있다. 이 탱화는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있는 것으로 크기는 가로 190Cm, 세로 145Cm이다.

■ 요사(遼舍)
경내에서 서쪽으로 자리잡은 옛 요사채는 무상대사가 지은 중향각과 현주지연 묘행이 지은 동선당 2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두 건물 뒤로 넓은 땅을 확보하여 거기 가건물인 공양간을 지어 신도들의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이 두 건물은 종무와 스님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유하사의 선방에는 평소 많은 비구니 스님이 와서 수도를 하고, 젊은 신도들이 많아 늘 활기가 넘친다. 특히 차량의 접근이 쉬워 경향 각지에서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신앙심을 굳히고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 희망을 갖고 돌아가는 알찬 부처님의 도량이다.
 
◇ 동우 스님(주지)과의 만남
늦은 오후 주지 스님께 전화를 하고 유하사에 도착했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서녘으로 기우는 시간, 절에 도착하니 주지스님께서 절 마당을 쓸고 있었다.
1897년 창건된 이 사찰은 비구니 스님의 수행도량으로 무심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1990년 중반 묘행스님이 폐사된 사찰을 다시 일구어 사격을 갖추었다고 했다. 무심스님은 2014년 입적하셨고 수제자인 동우 스님이 2019년부터 주지 소임을 맡아 사찰을 이끌어가고 있다. 유하사는 기도와 정진하기에 좋은 도량이다.
동우 스님은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깨어있는 마음으로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하사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 불자를 위한 경전읽기, 초기경전읽기, 불자 각자 1년 1만 배 기도하기, 법회 듣고 공부하는 도량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조덕수 기자  duksoo1144@hanmail.net

대웅전
대웅전
용화전
용화전
선원
선원
요사채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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