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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명시(名詩)의 뿌리는 人生苦에 있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4.08 20:33 수정 2019.04.08 20:33

김 시 종 시인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나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고생덩어리로 출생신고했다. 내 인생의 든든한 날개가 되어주실 아버지는, 치은염으로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셨다.
아버지가 죽고 안계시다면 생활의 터전이 될 논밭이라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내 땅이라곤 손바닥만한 땅 한 떼기도 없는 절대빈곤이 숙명적 내 몫이었다.
태어나고부터, 고생스런 삶이 지속되었으니 꿈도 희망도 있을 수 없었다. 안 죽고 산 것이 기적이라고 할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스물 네 살 때 청상과부가 된 모성애가 강한 우리 어머니가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가난하게 살고 외롭게 산다고 내 인생이 천벌을 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인생을 많이 생각하게 되고 어려움(고생)을 참을 줄 알아, 인생이 무엇인가를 포시럽게 수월하게 산 사람보다 깊이 생각하여 어려서부터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생겨 이십대 중반부터는 인생에 대한 나의 깨달음이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것은 결코 나의 뻥(?)이 아니다. 그때는 나를 옳게 파악할 여유도 없었지만 내가 20대(代)에 지은 시를 보고 뒤늦게나마(78세) 확실히 알게 됐다. 내가 20대(代)에 지은 인생을 통달한 시 3편을 살펴보면, 애독자들도 나의 뒤늦은 20대의 평가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① 사바(1966년) ② 인연(1968년) ③ 낙과(1970년)을 같이 살펴 봅시다요.

1. 사바 / 김시종
살구꽃 화사히 펴도 흙바람 부는 사바

무심한 애 팔매가 아뿔사, 어른을 맞춰‥‥
그렇게 찡그릴거야, 어처구니 없는 북망(北邙).

길 가다 소나기 만나 오두막에도 잠깐 쉬듯,
연(인연)이 없는 곳에 더러는 맘을 두고

웃으며 때론 흐느껴도 살아가는 사바다.
(1966년 11월?시조문학 14집)
※ 덧말 : 안동교육대 2학년 가을. 내 나이 24세 때 지은 시다. 백수 정완영선생은 내 시를 보고, 김시종(24세)의 시는 이미 익었다고, 정재호시인 앞에서 찬탄을 했다고 한다.

2. 인연/ 김시종
살구꽃 불 지핀 봄날 북촌 망아지는
남촌에 나 살 암망아지
울음소리 지피는 양해
볕바른 벽에다 대고
비게질하는 인연.

아침 저녁 고갯길에서
하냥 만나는 흰 동정소녀.
한 달을 서로 스쳐도
말 한 마디도 못 나뉜 수줍음‥‥
그러나 하루도 못 뵈는 날은
그리워지는 인연.

속일 수 없데 참 맘속에
우러난 샘물사랑은‥‥
며칠 뜸해 마주치면
더 밝고 뜨거운 우리눈매
전생의 황홀한 기약
예서 이뤄 보는가.
(1968년 7월 한국교육 신문)
?덧말→1968년 12월 한국교육신문 연말시평(年末詩評)에, 김광림시인이 토속적인 시라고 언급(言及)한 바 있다.

3. 낙과(落果) / 김시종
전생(前生)의 나무에도
현생(現生)의 수풀에도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스스로운 낙과(落果)한 알
매여서 흔들리던 적을
그윽히 돌아본다.

옛임아 아는 체 마오.
푸진 고요 헝클릴라
전생의 업보도 현세의 업연도
일체(一切) 벗어나 나는‥‥
억겁도 한결로 고요히
현세로만 누려지이다.
(1970년 월간문학 7월호)
?덧말→발표는 1970년 월간문학 7월호에 했지만, 이 시는 1969년 8월에 지었다.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은 선택의 기로(갈림길)에 섰을 때다. 1969년 5월에 교직(초등교사)이냐? 기자(현재 한국경제 신문)냐? 생각이 엇갈려 선택을 망설였고, 며칠 밤을 고민으로 지샜다. 1969년 기자직을 고민 끝에 어렵게 포기했지만, 1970년 3월 1일 공립중?고등학교 역사과 교사로 힘찬 새 출발을 했다. 중진시인 신석초 선생님이 현대문학(1970년 8월호)에 필자의 ‘낙과’를 향가를 현대에 부활시켰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아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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