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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화국의 위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11.01 14:23 수정 2016.11.01 14:23

혼란은 괴물을 잉태한다. 혼돈에 대한 우려와 공분(公憤)은 극단적 선택을 가져온다. 무질서에 대한 염증이 더 큰 악수(惡手)를 재촉한다. 히틀러와 나치스도 그렇게 탄생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질서와 무능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다.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기만적 공약에 매료됐다. 극심한 혼돈이 독일인들의 눈을 멀게 했다. 독일은 1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됐다. 황제 빌헬름2세는 퇴위 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군부(軍部)는 전쟁을 일으켜놓고도 수습 책임은 의회에 떠넘겼다. 군(軍) 지도자 그뢰너 장군은 1918년 11월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사회민주당 당수에게 "볼셰비즘에 반대하면 충성을 다 바칠 것"이라고 제안했다. '조건부 충성' 약속이라기보다는 수습 책임을 전가하려는 계산이었다. 어차피 사회민주당과 볼셰비키는 DNA를 달리했다. 사회민주당은 의회 민주주의를 신봉했다. 러시아 볼셰비키의 폭력 혁명과 독재를 반대했다. 군부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생색도 내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포석이었다. 공산당을 제외한 19개 정당이 1919년 1월 총선에 뛰어들었다. 사회민주당은 예상대로 제1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득표율은 37%에 그쳤다. 독자적인 집권은 불가능했다. 중앙당, 독일민주당과 함께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진보와 보수세력의 협력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했다. 바이마르 헌법은 '거부권 정치(vetocracy)'를 부추겼다. 전국적인 득표를 기준으로 의석을 배분했다. 전국적으로 6,000표를 얻을 때마다 1석을 확보했다. 군소정당이 난립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1932년 총선에는 무려 38개 정당이 참여했고, 18개 정당이 의회로 진출했다. 1933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질 때까지 이런 현상은 지속됐다.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다. 내각 구성을 위해 정당들의 연합은 불가피했다. 연립내각은 늘 삐거덕거렸다. 내각에 참여한 정당들의 생각과 계산이 달랐다. 정책 조율은 쉽지 않았다. 정책의 효과를 따지기보다는 그 배경과 의도에 대한 의심이 먼저였다.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암투는 내각을 마구 흔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정부가 바뀌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14년 동안 총리가 14차례나 교체됐다. 되는 일이 없는 게 당연했다. 독일인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배상금 지급을 위해 마구 돈을 찍어냈다. 통화 남발은 물가 폭등을 불러일으켰다. 물물교환이 정상적인 상거래를 대체했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식량폭동이 일어났다. 자존심도 짓밟혔다. 독일은 해외 식민지를 모두 잃었을 뿐 아니라 자국 영토까지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등에 할양했다. 프랑스는 "빌헬름2세를 전범재판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배상금 지급 불이행을 이유로 루르 지방을 점령하기도 했다. 삶이 피폐해지면 합리적 사고도 사라진다. 독일인들은 나치스의 선동에 넘어갔다. 자유민주주의는 종파적이고, 비효율적인 이데올로기로 치부됐다. 독일인들은 집단 최면 속에 전체주의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게이트로 휘청거리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있으나 권위는 사라졌다. 격랑을 헤쳐가야 하는데 사공은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작동하지만 공화정은 기능 부전 상태다. 숱한 국민들이 촛불시위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은 공동의 목표와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체다.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이 나라를 좌우하는 게 아니다. 정부와 함께 국회도 국민의 위임 아래 국정 운영 책임을 갖는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면 국회가 이를 보완해야 한다. 헌법은 '제3장 국회', '제4장 정부(대통령과 행정부)', '제5장 법원' 등의 순으로 3부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해 놓고 있다. 국회의 역할이 정부 이상이라는 방증이다. 나라는 표류하는데 야권은 팔짱만 끼고 있다. 국정 운영을 위해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하다가 이제는 전염병 환자 피하듯 몸을 사린다. 도무지 '책임 윤리'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정치적 공학만 난무한다. 국민은 현명하고 지엄하다. 무자격자에게 공적 권한을 멋대로 위임한 대통령도 용서하지 않지만 제 역할을 외면하는 정치인들도 용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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