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법전은 경영전략 교과서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5.30 19:00 수정 2019.05.30 19:00

김 화 진 교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전쟁을 막는 외교관보다 전쟁에서 이기는 장군이 더 높이 평가받고 병을 막는 예방의보다는 대형사고를 수습해서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외과의가 명성이 더 높다.
마찬가지로 위험한 경영판단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법률가들은 회사 안에서 인기도 별로 없고 대우도 상대적으로 박하게 받는다. 고심해서 만들어낸 사업계획에 항상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고 이런저런 것을 조심하라고 하면서 뭔가 기를 꺾기 때문이다.
금융회사가 법규위반으로 큰 사고를 일으켜서 거액의 벌금이나 손해배상금을 내게 되면 그동안 열심히 일해 돈을 번 보람이 다 없어지지만 일어나지 않은 사고에 대해서는 누가 사고를 막았는지 대개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공적도 인정되기 어렵다.
그러나 법률은 브레이크도 걸지만 회사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기도 한다. 회사가 법률가 출신들을 기용하는 의미는 이들이 대박을 내주지는 못해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사업 방향을 알려주고 대형사고도 막는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강조되면서 기업의 운영에서 차지하는 법률의 중요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유능한 경영자가 성희롱 사건으로 회사에서 퇴출되는 사건은 사전에 방지해야 하고 작업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 대규모 해양오염을 발생시키고 회사가 20조 원의 벌금을 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허튼 교수가 2017년에 수행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S&P500 미국 대기업 3,500명의 CEO들 중 약 9%가 법학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7만 건의 기업관련 소송을 분석한 결과 CEO가 법률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소송 대상이 된 비중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공정거래, 고용과 관련된 인권소송, 노동, 증권 등 분야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은 빈도의 소송이 발생했다. 소송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패소나 화해 비율이 낮다고 한다. 다른 분야 박사학위나 MBA, 명문대학 출신 여부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CEO가 아닌 회사 내 고위 임원들의 법학 배경이나 사내변호사의 존재도 결과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에는 앞서간 국내외 기업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법률가들의 역할은 법률에서 경영전략을 찾아내는 데까지로 진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중간관리자에 그치지 않고 고위직에 법률가들이 많이 진출해야 한다. 중간관리자급 법률인이 최고경영자와 이사회에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수치나 통계를 찾지는 못했지만 국내 대기업 최고임원들 중에 법대 출신, 나아가 법률가 출신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수한 인재들이 고유의 법률직으로 다 흡수되어 갔고 거기서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만족스러운 경력을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 기업으로 진출한 사례는 과거 많지 않았는데 ‘국가고시에 합격하지 못해서 간 경우’라는 세간의 인식도 있었다.
또, 법학도로서 기업경영자가 된 경우는 기업경영자로 성공적 변신을 했기 때문이지 기업에서 내내 법률전문가로 활약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로스쿨 시대가 배출한 법학도들은 전·후방으로 기업경영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머지않아 경영, 경제를 공부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로스쿨에 들어올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들이 유의한 비중으로 한국기업의 최고위직에 오를 것이고 법률이 국가 정체성 확립, 인권의 신장, 분쟁의 해결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도 창출한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