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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광해대왕(光海大王)이 맞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6.09 17:45 수정 2019.06.09 17:45

김 시 종 시인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폐주를 대왕이라 부르다니! 당신 정신 있는 사람 맞아? 정신만 있다 뿐인가, 역사의식도 뚜렷하게 살아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우화이다. 사람과 사자가 같이 여행을 하면서, 사람에게 제압당하는 사자상(像)을 보여주어 사람이 유력(有力)을 과시했는데, 저 석상은 사람이 만들어서 저렇게 된 것이지, 사자가 만들었다면 사람이 제압당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사자가 반론을 폈다. 
인류 역사도 마찬가지다. 멸망한 나라나, 쫓겨난 임금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악의와 굴욕의 역사로 적어 당시의 올바른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임금들은 조선의 사관(史官)이 역사를 적어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임금들이 많아, 개혁정치에 힘썼던 공민왕도 마지막 모습이 동성연애자로 왜곡되어 있다. 
조선의 임금 중에는 광해군이 역사의 최대 피해자라 할 만 하다. 광해군은 제위 15년간 선정(善政)을 폈지만, 폐모살제(廢母殺弟)를 했다는 서인들의 주장 때문에 지금까지도 폭군의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
광해군은 임란 때 세자로서 국가수호를 위해 ‘분조(分朝)활동’에 올인했고, 임란 후에는 국토재건을 위해 밤잠까지 설쳤던 슬기로운 임금이었다. 임란 때 소실됐던 실록을 복간하고, 성지와 무기를 수리하여 외침에 적극 대비했다. 광해대왕(光海大王)이 다시 복원해 낸 실록이 광해대왕을 폭군으로 격하했으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연산군은 사흘이 멀다 하고 큰 잔치를 벌여, 국고를 탕진하고 중과세를 하여 빈핍한 민초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하고, 성균관, 원각사를 기루로 만든 천하의 폭군임이 자명하다. 광해군은 반정(反政)으로 도중하차하였지만, 광해대왕으로 부르고 싶도록 멋진 현군(賢君)이었다. 굶주린 백성들이 생겼다는 상주(보고)를 받으면, 기민이 불쌍하여 잠 못 들고 흐느꼈고, 내탕고의 쌀을 기민들을 위하여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쏜 따뜻한 가슴의 휴머니스트였다. 당시 백성들에게 가장 큰 짐 덩어리였던 공물제도를 개혁하여, 토지소유자에게만 토지 결수에 따라 세금을 내게 하여 가난한 백성들은 면세 조치하고, 땅을 가진 양반들에게 명쾌하게 납부토록 했다. 현물 대신 대동미, 대동포, 대동전으로 하여 납세운반도 납부도 손쉽게 만들었고, 공인이라는 대납자가 생겨 상업발달을 촉진시켰다. 당시 토지 1(結)은 대게 약 3천 평이었고, 쌀 생산량은 1결당 20섬이었다. 대동미는 토지 1결당 미곡 12말로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적절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광해대왕은 명과 청의 교체기에 중립외교를 고수하여 국가가 위태롭지 않게 외교에 능란한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광해대왕을 내몰고 등극한 인조는 친명반청 외교에 집착해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국난을 자초했다. 광해대왕은 서인 김류, 이귀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세력에 밀려났지만, 강화를 거쳐 절해고도 제주 섬에서 18년 유배생활 끝에 자연사했다.
조선의 임금으론 영조, 태조에 이어 3번째로 장수 했다. 쓰라린 폐주의 귀양살이였지만, 광해대왕은 18년 세월을 울부짖지 않고, 차분하게 여생을 살고 마친 것이다.
‘진인사 대천명’을 한 자신 있는 인생이었기에, 분노하지 않고 굴욕 된 삶을 감수한 것이다.
요사이 우리나라 국민 수명이 팔십세를 넘어섰다. 국민평균수명연장에 보건소와 한방의도 중요한 몫을 했다고 본다. 한방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태어난 것이 바로 광해대왕 시절이다. 어의 허준대감은 16년에 걸쳐 동의보감 25권을 저술했다. 민초들도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로 약초이름을 적어 놓았다. 허준은 서얼로는 꿈도 못 꿀 새 역사를 이룩했다. 의관으로서는 종3품이 최고였던 시대에, 의업과 국가에 크나큰 공을 세워 정1품 정승반열에 까지 올랐다. 허준이 신분의 벽을 초월할 수 있었던 것도, 광해대왕의 현명한 자질이 그를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미미한 필부의 무덤처럼 버려진 광해대왕 무덤을 능으로 승격하고, 묘역을 손질하여 억울하게 축출된 비운의 왕을 대왕으로 추존함으로써, 묻혀 진 선정을 재조명하여 산자 뿐 아니라 죽은 자에게도 억울함을 풀어주는 복된 이 땅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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