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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명견열전(名犬列傳)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6.12 20:05 수정 2019.06.12 20:05

김 시 종 시인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어린 시절엔 집에 개를 키운 적이 없어, 개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전혀 없다.
그런 내가 개를 우리집에서 키우게 된 것은, 1971년 가을(10월), 점촌(店村)장날 어머니가 장보러 간 사이에 도둑이 들어 빈집을 털어갔다. 도난 품목은 현금9천원(당시 돼지고기 60근 값), 야외전축 1대, 레코드음반 15장, 순금반지 3돈 등 당시로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당시 나는 문경군 점촌읍 흥덕리 소재 문경중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1971년 10월 어느 날 오후 문경경찰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내게 전화를 주신 경관께서 먼저 놀라지 말라며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조심스럽게 알려주셨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경관 말씀을 듣고 놀라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지만, 내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나, 두 모자(母子)가 단란하게 사는 집에 도적이 들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날 가축시장에 들려 우리집을 지켜줄 방범견(강아지)을 서둘러 구입했다. 도둑맞고 나서 경찰서에서 수사를 했지만 도둑은 맞기가 쉽지, 도둑을 잡는 일은 복권일등당첨보다 어려운 일이다. 도둑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 때문에 우리 집 방범 대장격(格)인 개를 1971년 10월부터 2018년 3월 19일까지 47년 5개월 동안이나 개를 계속 기르게 됐다.
  우리집에서 15년 4개월 19일 동안이나 정성껏 기른 차돌이가 울타리 구멍으로 나가 실종이 되었다. 아내의 극구만류로 47년 5개월에 걸친 양견사(養犬史)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반세기(半世紀)에 걸쳐 내손을 거친 견공(犬公)들은 백 여 마리는 됨즉하다. 그중에 내가 정성을 다해 돌본 명견(名犬)세 마리에 얽힌 흐뭇한 순간들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1. 산적 이야기→산적이는 바로 옆집에 태어난 강아지인데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잘 찍힌 눈빛이 초롱초롱한 숫 강아지였다. 네 마리 형제 중 가장 앙증맞아 개주인에게 특정하여 우리집에 입양을 하게 됐다. 산적이가 우리집에 입양되고 나서 밥도 잘 안 먹고 강아지가 앓아댔다. 아내가 산적이를 목욕시키다 귀가 곪은 것을 발견하고 연고를 몇 번 발라주어 환부가 꾀병같이 아물고 밥도 잘 먹게 되어 토실토실한 충실한 강아지로 자라게 됐다. 천성이 총명한 산적이는 제 병을 고쳐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림자 같이 따라 다녔다. 아내가 이웃집에 놀러 가면 산적이가 아내 신발을 물고 마을 나들이를 곧 잘했다. 아내가 이웃집에서 집에 돌아오려고 하면 신을 신발이 없어 한참을 찾다가 이웃집에 슬리퍼를 빌려 신고 오면 산적이도 집에 오지 않았다. 두어 시간을 골목을 헤매다 돌아온 산적이가 아내 신발 두 짝을 물고 와서 안방 봉당에 갖다 놓는다. 하나 신통한 것은 장시간 산보를 하고 돌아와도 정확하게 신 한 켤레를 틀림없이 갖다 놓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산적이는 신통한 점이 또 하나 있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명곡(名曲)이 흘러나오면 비슷하게 따라 불러 산적이의 음악성에 온 식구가 감탄을 마지않는다. 음악 같잖은 노래는 착각으로라도 따라 부르지 않는다. 명곡(名曲)을 따라 부를 때는 앞발을 두 개 모아 마치 성악가가 합장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 신통방통하다. 텔레비전에서 언젠가 미국에서 콩콜 2등을 한 음악견(音樂犬 )의 노래를 방송했는데 우리집 산적이 노래에 비해 하수(下手)였다. 산적이는 우리 집에서 12년 2개월을 머물다 목련나무 밑에서 영원히 안식하게 됐다.
2. 똘똘이 이야기→똘똘이는 숫캐로 산적이 2세다. 온몸이 검은색으로 건강이 좋아 윤기가 돌았다. 성질이 온순하여 개를 여러 마리 길렀지만 딴 개와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는 평화주의자다. 병이 나서 약을 먹으라고 주면, 스스로 먹어 주인을 감동케 했다. 똘똘이는 나중 피부병으로 9년 4개월 13일을 살고 역시 장미나무 곁에 안장됐다.
3. 차돌이 이야기→차돌이도 명견 산적이 2세다.
차돌이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개다. 강아지시절부터 땅에 앉은 참새 몇 마리를 덮쳐, 행동이 민첩하고 사냥술이 뛰어남을 과시했다. 잊지 못할 특기사항은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밤새 강아지 차돌이가 꼴박쥐(쥐새끼)를 12마리 잡아 사냥기술도 놀라웠지만, 쥐새끼 3마리씩 가지런히 정돈하여 4줄로 눕혀 놓아 사람에 비견할 정리정돈 기술에 탄복했다. 강아지 차돌이는 그날 아침 주인을 쳐다보며 제 기량이 멋지지요. 칭찬을 바라는 듯했다. 차돌이는 충성심도 깊고 수캐답게 사나왔다. 주변의 개를 감싸지 않고 사정없이 제압하여 화합이 아쉬었다. 차돌이는 2018년 3월 19일 오전 10시 가출하여 실종됐다. 차돌이는 우리집에서 가장 오래 산 개로 15년 4개월 19일을 살았다. 차돌이의 실종을 끝으로 우리집의 47년 5월에 걸친 우리집 양견(養犬史)는 아쉽게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 간 명견(名犬)을 보내주신 신(神)께 감사하고 못난 주인을 위해 재롱과 충성을 바친 견공(犬公) 제현의 명복을 삼가 비노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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