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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중 대결 부르는 ‘북극 실크로드’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6.18 20:32 수정 2019.06.18 20:32

김 수 종
뉴스1 고문

지난 5월 23일 섭씨 33도가 넘는 더위로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악몽 같던 작년 더위가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향해 덤벼들고 있는 기후변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뉴 노멀(New Normal)’이 되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가장 급속히 상승하는 곳이 북극해다. 해마다 북극 얼음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과학자들은 21세기 안에 여름철 북극얼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한국인들은 평소 북극 얼음을 보고 살 일이 없으니 그게 무슨 대수냐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지구과학자들은 북극얼음이 사라지고 그린란드 만년설이 모두 녹으면 바다수위가 7m 높아지는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얼음이 줄어드는 북극해가 기회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극 항로가 트이고 항해시간이 열흘 이상 단축됐다. 또 북극해와 연안에 매장된 석유와 희토류 등 광물자원을 채굴하기도 쉬워진다. 2007년 독일 화물선이 처음 여름철 북극항로를 통행한 이후 해마다 수십 척의 상선이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쇄빙선의 도움을 받지만 점차 항로가 넓어지고 운항기간도 늘어날 것이다. 북극해가 지중해와 같은 열린 바다가 된다는 얘기다.
중국이 막강해진 경제력을 지렛대로 이곳에 관심을 쏟으면서, 북극해 제해권이 미묘한 국제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북극해에 연고권을 주장하는 나라들이 만든 배타적 클럽, 즉 북극이사회(Arctic Counsel)가 있다. 환경보전과 자원개발 등 북극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996년 설립된 국제기구로 북위 66.33도 북쪽에 들어가는 러시아, 캐나다, 미국, 덴마크(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8개국이 회원국이다. 하지만 군사시설로밖에 별 쓸모가 없는 북극해는 사실상 러시아와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북극이사회는 2012년부터 북극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일 영국 네덜란드 폴란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싱가포르 스위스 아일랜드 등 14개 나라를 옵서버 국가로 참여하도록 허용했다.
북극해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뜨겁다. 영향력 팽창을 추구하는 시진핑은 기후변화로 넓어지는 북극해를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본다. 중국의 큰 관심은 북극항로와 북극해 연안의 가스 등 에너지 자원이다. 러시아가 중국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러시아는 중국의 에너지 시장을 노리고 중국 자본을 시베리아의 가스전과 인프라에 투자하게 하고,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중국에 쇄빙선 서비스를 해주고 대가를 받을 요량으로 접근한다. 중국은 북극해연안 가스개발에 투자했고, 작년 가스운반선이 북극항로를 따라 중국으로 항해했다. 러시아가 제안한 북극해 연안 항구건설은 장차 북극해 제해권 확보를 위해서도 중국엔 군침 당기는 프로젝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열고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얼음이 녹아 뚫리는 러시아 연안 북극항로를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계시킬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 후 중국과 러시아는 북극의 해빙(解氷)상태를 연구하는 공동연구소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중국 정부 고위 공직자들은 북극해 진출을 공공연히 ‘북극실크로드’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일 정도다. 중국은 팽창하는 중국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원양해군을 강화할 뜻을 비쳤다. 자국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북극에 해군함정을 파견하겠다는 얘기다.   
미국은 이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이미 미국 국방부는 올해 의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중국의 북극 제해권에 대한 야망을 지적하며 경계를 보냈다. 중국은 그동안 북극해 진출을 위해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등 북극이사회 회원국에 공격적으로 접근해 왔다. 중국이 가장 중요시하는 곳은 그린란드다. 그린란드는 방대한 땅을 가진 북극해 요충지이며,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희토류 매장량이 풍부하다. 중국은 이곳에 여러 개의 공항 건설을 제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린란드의 주권을 가진 덴마크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들 계획을 포기하게 했다.
미국으로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동업자 관계로 북극해를 지배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노골적인 견제에 나섰다. 5월 하순 핀란드에서 열린 북극이사회 각료회의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의 북극해 출현을 남중국해 분쟁에 빗대며 중국을 비난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치열하다. 국부의 확장이 패권의 길임을 역사적으로 터득한 미국과 중국은 비어 있는 곳을 가만 두지 못한다. 남한 면적보다 140배나 넓은 북극해가 얼음이 걷히면서 미·중 패권쟁탈의 뜨거운 바다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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