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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욜로은퇴 ] 퇴직 후 경계해야 할 두 비극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7.01 19:20 수정 2019.07.01 19:20

김 경 록 소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교수, 공무원을 거치고 한동안 쉬고 있던 지인 한 분이 한국은행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정문에서 경비가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 보자 순간 ‘집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어디 가면 꼭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는 데 명함도 없고 하니 곤란하더라는 것입니다. 워낙 쾌활한 분이라 웃어 넘겼지만 아마 보통 사람들은 ‘이젠 나를 무시하는구만’이라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질지 모를 일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위치나 역할을 일컬어 ‘페르소나(Persona)’라고 합니다.
페르소나는 라틴어로 ‘탈’을 뜻합니다. 고대에는 연극을 할 때 슬픈 연기에는 슬픈 표정의 탈을, 화난 얼굴의 연기에서는 화난 탈을 썼다고 합니다. 번개같이 탈을 바꿔 대는 중국의 변검(變?)처럼 가면을 통해 역할을 나타낸 셈이죠. 이 의미가 발전해서 페르소나는 이제 ‘사회적 가면’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판사, 의사, 정치인, 기업인 등 모두 자신의 역할에 따른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와 같은 가족 내에서의 역할에서부터 어느 회사의 과장이나 부장 같은 사회적 역할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나의 가면만을 영원히 쓸 수 없으며 언젠가는 가면을 벗고 다른 가면을 쓰거나 아니면 가면 없는 자기자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퇴직을 하고 나서 맨 처음 맞닥뜨리는 게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를 벗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극이 탄생합니다.
페르소나를 벗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가면을 너무 오래 써서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여러 가지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친구나 지인 회사에 고문으로 명함만 만들어 다니거나 법인을 만들어 대표 명함을 들고 다닙니다. 어쩔 수 없이 벗은 사람 역시 옛날의 페르소나 흔적을 잡으려고 애씁니다. 자신이 제일 잘 나가던 시절의 직위로 불려지길 원하죠.
페르소나를 벗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민낯에 당황하게 됩니다. ‘내가 이런 사람 밖에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오래 동안 자신을 감쌌던 조직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넓은 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개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십년을 자신과 페르소나를 동일시하다가 이 둘이 분리되니 마음도 분열증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 주지 않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라고 벌컥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인연을 끊고 잠적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페르소나를 벗는 과정에서 혹은 벗고 나서 민낯에 적응을 못하면 우울해지고 면역력도 약해집니다. 부작용 없이 페르소나를 잘 벗기 위해서는 본래의 자신을 용기 있게 마주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민낯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 가면을 벗어 던지고 진정한 나로 살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소우주입니다. 그만큼 복잡하기도 하지만 많은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공부는 젊을 때 다 끝냈다고 생각하지 말고, 노후에 다른 종류의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는 또 다른 비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제가 6년에 걸친 세월 끝에 박사 논문을 마쳤을 때 형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논문을 마치면 족쇄가 모두 풀린 것 같은 마음에 기분이 날아갈 듯 하여 의욕이 솟구치는데, 바로 그 때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강철 조직은 조그마한 망치로 툭툭 때려 봐야 끄떡 없지만 계속 때리면 겉으로는 아무 표시 없어도 어느 순간 뚝 부러져 버린다고 합니다. 작은 망치이지만 그 충격이 조직 내부에 미세한 균열을 가져오는데 이게 축적되어 임계점을 넘으면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부러져 버리는 것입니다. 큰 일을 끝내고 덜컥 병이 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6개월 정도는 강제로라도 좀 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 박사 논문을 쓰고 큰 병 걸리는 사람을 가끔 봅니다.
퇴직을 한 사람의 몸도 미세한 균열이 축적된 강철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몸 속은 수많은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몸 속의 장기(臟器)들이 여기저기 약해져 있습니다. 퇴직을 하고 나면 갈 길이 멀고 마음이 초조하여 무언 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습니다. 거기에다 페르소나를 벗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습니다. 이러다 어느 날 강철 같은 몸이 부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근래에 큰 병으로 쓰러지는 친구들을 부쩍 많이 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균열조직의 비극’이라 부릅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는 페르소나를 벗는 때와 겹치니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퇴직을 하고 나면 몸에 이상이 없는 것 같아도 푹 쉬면서 몸의 고장난 곳을 찾아 리노베이션(renovation)을 해줘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은 퇴직을 하고도 50년을 더 달려야 합니다. 몸이 건강할 때 50년을 달리는 것과 몸이 약해질 때 50년을 달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젊을 때 기억을 모두 잊고 몸을 리노베이션 하는 데 돈을 아낌 없이 써야 합니다. 퇴직 후 50년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닥친 문제를 슬기롭게 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일어나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퇴직 직후, 우리는 ‘페르소나의 비극’과 ‘균열조직의 비극’이라는 두 비극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선, 이 두 비극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도전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퇴직 후 여유를 가지고 몸을 리노베이션하며 자신의 민낯을 사랑하는 공부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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