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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연예가 산책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7.16 20:35 수정 2019.07.16 20:35

김 시 종 시인·자문위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연예인중에도 가수가 본명대신 예명을 가장 많이 쓴다. 기획사에서 신인가수를 선발하는데 선발에 합격한 신인들 예명을 미리 지어놓고, 새얼굴(신인)을 뽑는 게 연예계의 통상적인 관례라고 한다.
문인(文人)의 경우도 필명(筆名)을 본명(本名)대신 쓰는 경우가 가수만큼 흔하지는 않아도 더러 있다.
필자의 경우는 본 이름 김시종(金市宗)을 시종일관(始終一貫) 애용(愛用)하고 있다.
글을 짓는 것은 떳떳한 쾌거라고 확신하여 본 이름을 가릴 이유가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먼저 주요 가수의 예명과 본명을 적어 본다.

▲ 백설희(김희숙)→김해송 작곡가가 명명(命名) ▲남인수(강문수 姜文秀) ▲ 백난아(오금숙)→백년설 명명 ▲ 남진(김남진)→문여송 작명 ▲신세영(정정수) ▲ 황금심(황금동) ▲ 백년설(이갑룡) ▲ 이난영(이옥례) ▲ 페티김(김혜자) ▲ 도미(오종수) ▲ 최희준(최성준)→손석우작명 ▲ 안다성(안영길) ▲ 현당(선희준)  ▲ 이루(조성현) ▲ 진미령(김미령)  ▲ 윙크(강주희/강승희) ▲ 설운도(이영춘) ▲ 현숙(정현숙) ▲ 태진아(조방헌) ▲ 민해경(백미경) ▲ 송대관(宋大寬) ▲ 현철(강상수) ▲ 김정호(조용호) ▲ 김상희(최순강) ▲ 박재란(이영숙) ▲ 동방성애(박성애) ▲ 송민도(송민숙) ▲ 옹산(김은영) ▲ 이자연(이현옥) ▲ 윤희상(윤상일)

▣ 주요가요의 탄생연도(무순)
▲ 덕수궁돌담길(1966년) ▲ 강남달(1929년) ▲ 잃어버린 30년(1982년) ▲ 모래위의 발자국(1963년) ▲ 카스바의 여인(1992년) ▲ 희망가(1923년) ▲ 사랑(1983년/나훈아) ▲ 엉터리 양복장이(1960년) ▲ 나 하나의 사랑(1955년) ▲ 꿈이여 다시 한번(1959년) ▲ 오빠생각(1929년) ▲ 검은 장갑(1958년) ▲ 어머나(2004년) ▲ 연인들 이야기(1982년) ▲ 우중의 여인(1963년) ▲ 애수의 소야곡(1937년) ▲ 정말로(1980년) ▲ 찰랑찰랑(1995년) ▲ 열아홉 순정(1959년) ▲ 사랑의 송가(1964년) ▲ 머나먼 고향(1971년) ▲ 님(1963년) ▲ 청포도 사랑(1957년) ▲ 웬일인지(1959년) ▲ 고향에 찾아 와도(1958년) ▲ 모정의 세월(1972년) ▲ 나의 탱고(1959년) ▲ 사랑의 미로(1994년) ▲ 보리밭(1953년) ▲ 사랑의 배터리(2009년) ▲ 한강(1953년) ▲ 애모의 노래(1970년) ▲ 해운대 엘레지(1960년)
▣ 주요 가수분들의 데뷔곡
① 남상규(추풍령/1965년)
② 박일남(엽서 한 장/1967년)
③ 김하정(사랑/1968년)
④ 이규항(네잎클로버/1968년)
⑤ 이영숙(아카시아 이별/1969년)
⑥ 김상진(이정표 없는 거리/1970년)
⑦ 문정선(오라오라 /1971년)
⑧ 조애희(사랑해봤으면/1964년)
⑨ 여운(삼일로/1969년)
⑩ 송대관(세월이 약이겠지요/1971년)
⑪ 홍민(고별/1973년)
⑫ 남일해(이정표/1964년)
• 덧말→이상 살펴본 사실들은 별도로 된 책자로도 나온 것이 없다. 필자가 오랜 세월 방송을 경청하면서 취재수첩에 또박또박 적어 논 것으로 연예계에 대한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고 봐도 O.K다.
평소 필자의 칼럼을 관심 있게 읽어주신 애독자들께 이번 칼럼은 보너스라고 생각하셔도 무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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