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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억새풀 고개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8.21 19:15 수정 2019.08.21 19:15

김 시 종 시인·자문위원
국제PEN 한국본부

필자는 중앙문단 등단 53년차를 맞이하여, 산북중학교 문인제자가 주동이 되어, 43시집에 해당하는 김시종시선집 ‘억새풀 고개’를 엮고 있다.
시선집에는 시 200편을 뽑아 싣게 된다. 필자가 문단에 오른 반세기가 넘는 집필 생활에 나름대로 전력투구했기에 틀림없이 독자들의 마음을 울려 준 가편(佳篇)들로 시선집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시선집 이름을 억새풀 고개로 정한 것은, 문경새재가 본래 이름(고려때)이 초점(草岾)이었는데, 억새폴 고개란 뜻이다.
필자의 한평생도 탄탄대로에서 산 일은 거의 없고 우거진 억새풀을 헤치며 개척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억새풀 고개’로 하는 것이 내 팔자(운명)와도 꼭 맞는 시선집 제호가 기발하고 신통방통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엔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아리랑이 존재하지만 정선아라리·밀양아리랑·진도아리랑이 한국을 대표하는 아리랑으로 정착이 되어 있다.
정선아라리는 온화한 강원도 사람들의 착한 성질이 스며있는 따뜻한 노래라서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밀양아리랑은 익살이 넘치는 밝은 노래다. 밀양아리랑을 채보한 이는 박남포 선생으로 대작곡가 박시춘선생님의 부친으로 일본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음악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진도아리랑은 그야말로 민초(民草)들의 한(恨)이 응어리진 정서의 폭탄이다.
진도아리랑에서 특기할 사항은 진도아리랑 들머리(첫구절)에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로구나’가 돌출한다.
이 구절에 대해 한 마디도 제대로 풀이한 사람이 없어 국민들의 마음이 허전했는데, 필자가 똑소리 나는 정답(正答)을 드디어 확실히 찾아냈다. 동학농민운동이 바로 일어난 게 아니라, 3차례에 걸쳐, 의견개진이 있었다. 억울하게 처형당한 교조 최제우공의 무죄운동(명예회복)이 세 차례에 걸쳐 있었다.
교조신원운동 1차는 전라도 감영이 지척인 전주부근의 삼례에서 있었지만 조정의 불통으로, 2차(서울 대궐앞)도 탄압해산으로 끝나자 보은 속리산에 집결, 탐관오리 숙청·서양배척을 주장했지만, 조정에서 강제해산 시키자 일부가 문경새재로 잠입하여 후일을 도모하려 했다. 동학운동으로 성리학적 전통사회가 붕괴했고 민족운동으로 근대사회의 계기가 되었다.
문경새재에 잠입한 동학농민군들도 1895년 특파된 관군에게 섬멸되고 말았는데, 문경새재의 동학 농민군들은 대부분 전라도 농민이었다. 문경새재의 반군의 토벌에서 살아남은 동학교도들은 고향 전라도로 구사일생으로 귀향하게 됐다.
문경새재에서 탈출한 동학교도(동학군)가 고향 진도로 돌아가게 되어, 동무(동료)들의 생사를 상세히 알려주게 된다. 진도로 귀환한 동학농민군의 증언으로 자기 남편의 죽음을 비로소 알게 된 진도의 동학군 미망인은 드디어 진도아리랑의 첫 구절 작사자가 된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로구나’
시와 노래는 알고 보면 꼭 곡절이 있는 것이다. 시집 제호가 ‘억새풀 고개’니 필자의 시 ‘억새’(김시종)를 애독자들께 구경시켜 드릴까 합니다.

억새 / 김시종
억새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의(謀議)를 한다.
중지(衆智)를 모아 흐뭇하다고
머리를 끄덕인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제발 좀 싸우지만 말고
머리를 맞대고 중지(衆智)를 모으라고
슬기로운 흰 머리들이 타이른다.
(월간문학 200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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