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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력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07.12 19:42 수정 2016.07.12 19:42

지금 우리현실의 모습을 돌아보자. 인터넷 속도 세계1위를 자랑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도 청년들은 더 이상 일 할 곳을 찾지 못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굴뚝산업 근로자라도 취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비정규직청년들, 250만이 넘는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오늘도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의 젊음을 불태울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한참 꽃피워야 할 우리네 젊은이들이 힘없이 꺾이고 있는 현실, 바로 우리사회의 현주소다. 무너져 가는 경제구조, 1%교육관료 현장, 그러나 먼저 싸워서 이겨야할 적은 바로 안아무인격인 1%관료라는 것이다. 사드라고 국민들은 머리깍고 햇빛에 핏대 올릴 때 근무시간 바지쇼핑이나 하면서 자 잘못을 이해 못하고 당당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없는 패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세상은 아무도 낙관할 수 없는 불안한 시대다. 관료세상은 어떤가? 분쟁 조정의 해결사가 아니라, 사회 갈등 조장을 자처하고 나서 문제해결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에 눌러앉아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권력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지극히 당연한 말은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2005)라는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경제위기나 조선업의 파산이 아니라, 총체적인 신뢰의 위기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더욱 큰 위기다.“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이제 끝나야 하고,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이 말은 전직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러나 전직대통령은 자신의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고 먼저 세상으로 떠났다. 어쩌면 권력이란 인간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날카로운 비수가 분명하지만, 안타까운 수많은 민초(民草)들을 짓밟고 고통의 질곡으로 내몬 피의 대가인지 모른다. 질곡(桎梏)이란 죄수를 가두어 둘 때 쓰던 형구(刑具)인 두 개의 기다란 나무토막을 맞대어 그 사이에 구멍을 파서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를 채우는 차꼬와 수갑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즉 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질곡은 반드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민초를 질곡으로 몰아 간 가해자는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관료이고 피해자는 국민인 것이다. 국민은 염치를 아는 권력자를 원하고 있다. 때문에 권력자는 자연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전하기 위해 그 권력을 국민과 함께 써야하고 자신을 위해 수많은 백성을 곤혹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권력은‘그들만의 잔치’라는 오만의 배타적 이기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저속한 야합에 물드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권력자는 익숙해진 쾌감을 위한 선전선동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위대한 지도자 밑에는 위대한 국민이 있다.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국가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반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지도자는 소외, 가난, 질병, 환경 등에 대한 해결책의 해법은 평화라고 생각한다. 칠곡민은 말한다. ‘사드, 염치없는 관료, 나라를 위해 삭발,’영남인은 말한다. ‘사드, 염치없는 관료, 밀양신공항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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