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음률의 마술사 박시춘 작곡가(1913년 ~1996년)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9.04 19:53 수정 2019.09.04 19:53

김 시 종 시인·자문위원
국제PEN 한국본부

작곡가 박시춘 선생(1913년~1996년)은 제1세대 천재 작곡가시다. 박시춘 선생은 생전에 가요를 3천 여곡을 작곡한 소중한 음악의 영웅이시다.
박시춘 선생의 따님 미연씨는 자기가 어렸을 때, 작곡에 혼신의 정열을 집중하는 아버지를 보고 감동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연예평론가 박성서씨는 박시춘 선생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대명사 같은 분이라고 격찬했다. 박시춘 선생의 세평(世評)은 부지런한 작곡가요, 가수요, 악극단장이요, KBS 경음악 단장이며, 영화주제가도 도맡아 하시다시피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고 부지런한 어르신네였다.
6?25동란 중에는 전선야곡?굳세어라 금순아?임계신 전선?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전선가요를 많이 작곡하여 전쟁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큰 위안을 주신 고마운 어른이었다. 박시춘선생은 18세의 남인수(강문수)씨를 발탁하여 가요의 황제로 키웠고 현인 가수에게도 신라의 달밤·비 내리는 고모령을 주어 이 땅의 대형가수로 군림케 했다.
작곡가 박시춘선생이 작곡한 주요 대중가요를 간단히 살펴보련다.

 

주요 가요 일별
◈고향초(1948년)→김능인(조명암)작사·송민도(송민숙)노래. 사회가 발전하여 고향을 등지는 이들이 많을 때 애틋한 애향심을 일깨웠고 송민도(송민숙)의 가창력은 이 땅 대중가요를 순수음악(성악)수준으로 한 단계 높였음을 오래 기억해야 될 것이다.
◈애수의 소야곡(1938년)→이노총작사·남인수(강문수)노래·남인수 신인가수를 가요황제로 만든 국민 애창곡이다.
◈청춘고백(1955년)→손석우작사·남인수노래·애수의 소야곡과 더불어 청춘고백도 널리 유행됐다.
◈감격시대(1937년)→김해인작사·남인수노래 역시 성공한 노래다.
◈신라의 달밤(1949년)→유호작사·현인노래 해방과 건국공간에 신라의 달밤이 탄생하여 가수 현인의 독특한 창법으로 민초의 가슴에 어필하여 우리 국민들이 아끼는 가요서열 1번으로 등극했다.
◈고향만리(1949년)→유호작사·현인노래 이 노래도 나오자마자 인기가요가 됐다.
◈비 내리는 고모령(1949년)→유호작사·현인노래·고모령은 실제 지도에 없고 고모역이란 폐역이 남아 있다. 노래의 힘이 어찌 큰지 없는 고모령도 있게 했다. 비 내리는 고모령은 지금 신라의 달밤보다 애창되고 있다.
◈전선야곡(1952년)→유호작사·신세영(정정수)노래·신카나리아·장세정·이난영 이름에서 글자 한자를 양자하여(?) 신세영이란 신인가수 이름을 만들었다. 성공한 세 가수처럼 신세영가수도 대성(大成)하라고.
◈굳세어라 금순아(1953년)→정해인 작사·현인노래 가수 현인선생의 독특한 창법을 국민들이 모창하여, 굳세어라 금순아도 대박이 난 히트곡이 됐다.
◈임계신 전선(1953년)→손로원 작사·금사향(최영필)노래. 생전에 태극기를 흔들며 이 노래를 열창하던 금사향 선생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른다.
◈이별의 부산정거장(1954년)→유호작사·남인수노래·가요황제 남인수(강문수)선생의 대표곡이다.
◈아메리카 차이나 타운(1953년)→손로원 작사·백설희 노래·손로원 작사자는 평소 못 가본 이국을 무척 동경했다.
◈남성 넘버원(1953년)→반야월 작사·박경원노래. 당시 시류(時流)·사회상을 꿰뚫은 유행가였다.
◈물새 우는 강 언덕(1955년)→손석우작사·백설희 노래, 영화 ‘구원의 정화’의 주제가다.
◈일자상서(1970년)→반야월작사·김부자노래·국내 제1의 민요가수 김부자 가수가 완벽하게 열창하여 일자상서는 성공한 가요가 됐다.
◈봄날은 간다.(1954년)→손로원 작사·백설희 노래. 오래전 시 잡지 ‘시인세계’가 시인 1백 명에게 투표케 하여 가사 1등이 되었다. 그날 조사 결과 2위는 김능인(조명암)이 작사한 고향초(송민도 노래)가 뽑혔다. 좋은 가사 1위·2위에 뽑힌 노래는 백설희·송민도씨 같은 우수한 가수가 불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