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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중소기업의 나라, 독일의 디지털 투자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9.10 19:55 수정 2019.09.10 19:55

김 화 진 교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글로벌 4위인 독일의 산업생산력은 대기업들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나온다.
독일은 나라의 위상에 비해 대기업의 비중이 낮다. 매출액 기준 세계 10위권 독일기업은 폭스바겐 하나다. 물론 10위권 기업들은 1위인 미국의 월마트를 제외하면 거의 다 석유회사들이라 정통 제조업으로는 독일이 1위라고 볼 수도 있겠다.
독일에서는 중소기업들을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고 부른다. 옛 수도 본(Bonn)에 있는 미텔슈탄트연구소(IfM)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2015년 기준으로 법인세 납부 기업의 99.6%를 차지하고 사회보장보험료를 납부하는 근로자의 58.5%를 고용한다.
또, 독일의 중소기업들은 기업 매출의 35%와 직업교육의 81.8%를 담당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산업의 전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기계, 자동차 부품, 화학, 전기전자 등 4개 분야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
2차 대전 후 독일의 경제 기적을 이끌었던 경제장관 에르하르트(Ludwig Erhard)에 따르면 미텔슈탄트를 단순히 양적인 개념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텔슈탄트는 일종의 기풍(에토스)이며 경제주체가 사회에서 행동하는 근본적인 성향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사가들도 미텔슈탄트를 정의할 때 규모 외에도 다양한 요인을 감안한다. 가족경영, 장기적 관점, 종업원에 대한 투자, 혁신, 사회적 책임, 지역사회와의 유대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이 때문에 약 40만 명을 고용하는 비상장사 보쉬(Robert Bosch) 같은 기업도 미텔슈탄트에 포함된다. 보쉬는 창업자의 유지에 따라 이익을 사회적 목적에 사용하는 회사다. 이익의 거의 전부를 재투자와 사회적 기여에 사용한다. 2014년의 경우 순익 21억 달러 중 약 0.3%인 600만 달러만 배당에 썼다.
이렇게 국가 경제가 무수한 중소기업들을 단위로 조직되는 경우 정부 차원에서 전체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조율해 주어야 하는 숙제가 생긴다. 결국 관료조직의 우수성이 관건이다. 이 측면에서 독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라 전체가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처럼 잘 조직돼 있다.
독일의 국가조직 효율성은 지방분권도 큰 도움이 됐다. 지형적 요인도 컸다. 독일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평평한 나라일 것이다. 지역간 교통에 별 어려움이 없어서 골고루 흩어져 살았다. 역사적으로도 분권형 정치체제였다.
그러나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독일 사회의 효율성은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이 맡은 일에 전력을 다하는 데서도 나온다. 일을 처리하고 시간이 남으면 같은 일, 같은 서류를 다시 또다시 들여다본다. ‘남는 시간’에 스마트폰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유학생으로 처음 독일에 갔을 때 외국인 담당 학교직원이 학생들 집 주소를 다 외고 있어서 신기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기 드문 노동윤리의 나라다.
현재 독일의 중소기업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의 디지털화다. 대기업들도 이 조류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데 중소기업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전도사인 메르켈 총리가 집중적으로 중소기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가 투자한 R&D 예산이 지금까지 총 2억 유로다. 여기서 만들어진 테스트 베드에 중소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디지털화에 적응하기를 독려하고 있다.
독일은 2020년까지 80%의 기업들이 모든 밸류체인의 디지털화를 완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위해 민간부문에서 매년 400억 유로를 투자한다. 여기엔 지멘스와 SAP 등 대기업들이 선도적 역할을 한다. 디지털 경제 시대 정부의 역할은 조직과 조율, 그리고 지원이라는 것을 독일이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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