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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님과 함께(1972년)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09.24 19:54 수정 2019.09.24 19:54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내가 작곡가 남국인(남정일)선생을 주목하게 된 것은 여러해 전 ‘가요무대’ 프로에 명품대중가요를 소개하면서 말미에 작곡가를 소개하는데 출신지역을 명기(明記)했다.
남국인(1942년 문경태생)이라 화면에 자막으로 새겨놨다.
‘님과 함께’(1972년)라는 애창가요가 빅 히트를 하여 남국인이란 이름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 이미 잘 알고 있는 터였다.
필자(나)가 1942년 문경태생인데, 남국인 선생은 출생지도 출생년도도 나와 똑같아 행여 나와 학교동창생은 아닌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궁금증을 오래 가슴에 품고 사는 느긋한 사람이 못되어 남국인 작곡가 댁 전화번호를 쉽사리 알아내어 남국인 작곡가님과 드디어 통화에 성공했다. 남국인 선생은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선친께서 부산으로 이사하셔서 남선생님은 부산에 나서 학교도 부산에서 배정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남국인 선생이 문경을 출생지로 쓰는 것은 아버지 고향이기 때문이며, 명작사가인 정은이 사모님과 통화를 했을 때, 들었는데 남국인 작곡가님의 본적은 문경군(시) 호계면 견탄리 409(490?) 번지라고 하셨다.
남국인 작곡가님은 처음엔 남정일이란 본명으로 가수활동을 했는데 첫 취입곡이 ‘비 내리는 포구’였는데 첫 곡(曲)이자 마지막 곡(曲)이 되었다고 한다. 쾌청해야 항해가 순조로운데 제목부터 ‘비 내리는 포구’가 되어 흥행을 바로 접었다니 사람이나 예술작품이나 이름을 잘 짓도록 유의해야 한다.
가수를 폐업하고 작곡가로 전업(轉業)한 것이, 명작곡가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세상사는 법은 ‘새옹지마’인 것이다. 남국인 선생이 첫 작곡을 한 것이 25세(1967년)였다고 했다.
초창기는 작사와 작곡을 혼자 다 했는데, 고향 작사라고 한 것은 다 남국인 작곡가의 작품이다. 필명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국민애창곡인 ‘님과 함께’(1972년)도 고향 작사·남국인 작곡이라 표기됐다. 친구들과 낚시 차 충북 옥천의 저수지를 찾다가 감동적인 넓은 초원을 보고 작사·작곡을 했다. 시인이나 작가·예술가는 여행을 자주하여 새로운 창작의 동기(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초창기엔 원맨쇼(?)로 작사·작곡을 도맡아 했지만, 사모님 정은이교수와 인생 러닝메이트가 된 뒤부터 작사는 정은이 교수 몫이요, 남국인 선생은 작곡만 전념하게 되어 더욱 분업(分業)의 효과가 증대된 것 같다. 지금까지 작곡가 남국인 선생은 가요 2,400여곡을 작곡했는데, 홈런을 친, 히트곡만도 400곡이 넘는다. 정은이·남국인 커플이 낸 주현미가수의 ‘신사동 그 사람’은 커플의 시너지가 넘쳐 나는 히트 곡(曲)이다.
남국인 작곡가의 주요곡(曲)을 지면(紙面)관계상 간략하게 살펴보련다.
?주요 레파토리(남국인) ?님과 함께(1972년) 남진 노래 ?고향이 좋아(1972년) 김상진 노래 ?마음은 서러워도(1974년) 박일남 노래 ?당신을 알고부터(1969년) 김상희 노래 ?가지 마오(1970년) 가수? ?비 내리는 영동교(1985년) 주현미 노래 ?강남 멋쟁이 문희옥 노래 ?사랑의 거리(1989년) 문희옥 노래 ?신사동 그 사람(1988년) 주현미 노래 ?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1983년) 전영록 노래 ? 잃어버린 30년(1983년) 설운도 노래 ? 당신은 철새(1970년) 김부자 노래 ?사나이 블루스 배성 노래 ?잊으리(1974년) 이승연 노래 ?뽀뽀(2012년) 남진 노래 ?당신이 좋아(2009년) 장윤정 노래
덧말 : 겸손한 작곡가 남국인 선생님의 대성과 건승을 아울러 빕니다.   (김시종 사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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