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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낡은 시대를 이겨라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0.01 19:19 수정 2019.10.01 19:19

조 정 훈 소장
아주대 평화연구소

혹시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로 흘러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젊은이들이 흥얼거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노래를 모르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껴보시라. 그런 노래는 이제 더 이상 불리지 않는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통일 강의를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학생들이 얼마나 관심없고 지루해 하는 주제인지를. 절대 소수인 통일전공자들을 제외하면 통일 강의는 수업시간 조절을 위해 선택한 강의이다. 통일이라는 주제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슨 제목이어도 수강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남북관계와 통일에 관한 세미나나 콘퍼런스 장에 한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대학생, 청년층은 고사하고 3040세대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아마 있다면 대부분 발표 토론하러 나온 교수님의 제자들이거나 각종 행사 진행 요원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통일 담론이 늙어가고 있다. 새로운 담론도 없고 새로운 인물도, 세대도 없다. 지난 수십년 동안 같은 전문가들이 주장해온 담론의 변형이고 아류일 뿐이다. 남북관계가 중단된 지난 9년 동안은 그렇다 치다라도 이번 정부에서 재개된 드라마틱한–최소한 저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남북대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청년세대와 3040세대는 남북문제와 통일 담론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통일담론도 노령화됐다. 도무지 청년들이 동의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통일을 하자고 한다. 한 민족 한 핏줄이기 때문에 통일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청년들은 냉소를 보낸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척도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관심이 없는데 한번도 본적이 없는 북한 주민들이 같은 민족이어서 통일을 해야 한다니,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막대한 통일 비용이 내 주머니에서 나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북한 청년들과 편의점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시나리오가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통일대박이라고 주장하는 지도자들을 보면 청년들은 그냥 화가 난다고 한다. 북한개발도 어차피 돈 많은 재벌과 기성세대와 그 후손들의 잔치가 될 것 아닌가?
다음으로는 기회의 노령화다. 남북교류가 한창이던 시절에 만들었던 대학의 통일관련 학과와 전공은 9년간의 남북교류 단절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씩 자취를 감취었다.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기특한 꿈을 품고 북한학 통일학을 선택한 이들은 학위를 마치고 냉엄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그 세대 중에 정년트랙 교수로 임용된 사람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대부분 대학 강사직을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소위 세대 공평성(intergenerational equity)은 어디로 간 것일까? 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미래를 살아갈 세대의 의견과 주장이 없이 미래를 결정해도 될까? 절대 안 된다. 남북교류와 통일로 향한 길은 결코 우리에게 꽃가루만 뿌려진 길이 아닐 것이다. 많은 갈등과 희생이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길이다. 내가 결정한 일도 아닌데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열 사람이 없고 기쁘게 희생을 부담할 사람도 없다. 이대로라면 통일 무관심층이 아니라 통일 반대층을 양산하는 것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자명하다. 무대와 마이크를 다음 세대로 옮겨야 한다. 
더 이상 꼰대처럼 왜 통일이 필요한지 다음세대에게 훈계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미 기성세대가 경험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직접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세상에 관해 훈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새로운 주장에게 마이크를, 새로운 사람들에게 무대를 내주어야 한다.
혹자는 주장할 수 있다. 남북관계와 통일담론은 4차산업혁명과 다르다. 남북관계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북한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진실의 일부일 뿐이기도 하다. 지금의 북한은 매우 다른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북한을 직접 다녀온 이들의 증언들과 최근에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탈북민들의 의견은 일관적이다. 북한이 크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사로잡혀 미래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북한이 급속히 세대전환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분야의 북한 담당자들이 3040세대로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서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그 틀 안에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대신 매우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선호하며 세계의 흐름과 국제적 경험들을 매우 중요시하는 세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도 빨리 다음 세대를 양성해야 한다. 
이제 할 수만 있다면 전격적인 세대 전환이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세대 균형이라도 이루어야 한다. 20, 30, 40세대가 국민의 과반이 넘는다. 그들의 목소리와 의견도 같은 무게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청년들이 가득 찬 통일 콘퍼런스와 세미나가 자발적으로 여기저기서 열리고 그들의 대표들이 같은 세대인 북한 담당자들을 만나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를 논의하는 것이 한반도가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부모를 이겨라, 낡은 세대를 이겨라”라는 시를 쓴 박노해 시인처럼 외쳐본다.
“통일아, 낡은 시대를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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