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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엘리자베스 워런의 ‘슈퍼리치세’ 공약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0.03 18:52 수정 2019.10.03 18:52

김 화 진 교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미국의 대통령이 누구인가는 한국에 언제나 매우 중요한 문제였지만 지금처럼 중요했던 적은 역사에서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없이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트럼프가 내년에 재선에 성공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두 가지 변수가 새로 발생했다. 첫째는 미국 하원의 트럼프 탄핵 움직임이다. 그리고 둘째는 민주당 대선 주자 중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의 부상이다. 워런은 하버드 로스쿨 교수 출신이다. 1995년에 부임했다. 도산법 전문가로 오바마 행정부 때 소비자금융보호국장에 지명되었는데 금융계와 공화당 반대로 물러났고 2013년에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이 되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는 명예교수로 남아있다.
워런은 최근까지 민주당 내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 상원의원에 이어 3위로 자리매김해 왔었는데 최근 오하이오에서 여론조사 지지율 1위로 뛰어올랐다. 오하이오는 이른바 ‘경합주(swing state)’다. 미국 대선은 공화, 민주 양측 고정 지지층이 마음을 바꾸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이 결과를 좌우한다. 최다 12개인 경합주에서는 보통 4% 이내의 차이로 승패가 갈린다. 그중 하나가 오하이오 주다. 미국의 전 언론이 새 여론조사 결과를 중요 뉴스로 일제히 보도한 이유다.
워런의 선거공약은 다른 민주당 후보들의 공약과 대체로 궤를 같이 하지만 특이한 것이 하나 눈에 띈다. 바로 ‘슈퍼리치세(Ultra-Millionaire Tax)’ 도입이다. 이는 워런 캠프의 핵심 공약이다.
우리도 양극화 문제로 고심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미국에서는 이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미국에서 가장 부자인 400인이 전 흑인 가구와 히스패닉 가구 4분의 1을 합친 만큼의 부를 보유하고 있다. 1970년대에서 최근까지 최상위 0.1%가 보유한 부가 7%에서 20%로 거의 세 배 늘어났다. 상위 13만 가구의 재산이 하위 1억1700만 가구의 재산과 같다.
또, 워런은 미국의 조세제도가 재산보다 소득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상위 0.1%와 하위 99%의 조세부담율이 3.2%와 7.2%로 거꾸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워런이 내놓은 슈퍼리치세 구상은 재산이 우리 돈으로 약 600억원인 5,000만 달러 이상인 약 7만5,000 가구에 대해 매년 재산 가액의 2%에 해당하는 새로운 세금을 물린다는 것이다.
재산 1조2,000억원 이상 가구에는 3%다. 버클리대 연구에 따르면 그 결과 10년 동안 2조7,500억 달러의 세원이 추가로 창출되어 보편적 복지재원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워런 측 계산에 따르면 미국의 전 아동이 건강보험혜택을 받는데는 연 약 700억 달러가 소요된다. 워런은 공립대학 무상교육과 졸업한 학생들의 등록금 채무 탕감도 약속하고 있다.
문제는 대다수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이 현금이 아닌 주식과 부동산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납세를 위해 재산을 처분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주식의 경우 경영권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많은 슈퍼리치들은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평생 납세를 했고 막대한 세원을 창출한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추가적인 과세는 뭔가 ‘비미국적’이다. 
그리고 해외로 재산을 옮기거나 국적을 변경해 버리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프랑스가 가장 유명한 예다. 재산이 거의 100조 원인 LVMH 베르나르 아노 회장은 세금 때문에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려 했다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부자가 자기 나라 국민이 되겠다는데 마다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어느 나라나 투자 이민을 환영한다.
보통 사람은 평생 다 쓸 수도 없는 돈을 가지고 한 푼도 더 내기 싫다는 부자들이 많을까 하지만 부자들의 마음도 보통 사람들과 같다고 한다. 워런 버펫과 빌 게이츠는 예외다. 가진 것이 줄어드는 것을 싫어하고 그 공포 때문에 인색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된 것일 수도 있다.
워런의 공약이 특히 눈길을 끄는 이유는 지금까지 진보정당인 민주당의 어느 대선후보도 이런 공약을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공약은 사회주의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정당에 관계없이 태생적인 거부감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은 것으로들 본다.
그러나 이제는 유력한 후보가 이런 공약을 내도 될 만큼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향후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모든 후보가 워런의 이 공약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내놓아야 할것이고 그 과정에서 양극화의 현실과 ‘슈퍼리치세’ 개념은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제대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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