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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행동주의 펀드의 P&G 공격과 해피 엔드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0.20 18:32 수정 2019.10.20 18:32

김 화 진 교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2017년 10월에 있었던 프록터 앤드 갬블(P&G) 주주총회에서는 회사 경영진과 행동주의 헤지펀드 트라이언(Trian Partners) 사이에 위임장대결이 벌어졌다. 2000년의 조지 부시 대 앨 고어 대통령 선거를 연상시킨 한 편의 드라마였다. 트라이언의 넬슨 펠츠(Nelson Peltz) 회장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건이 0.2% 표차로 부결되었는데 재검표 결과 0.002% 표차 가결로 드러났다.
주주총회 결과를 놓고 양측간 승강이가 벌어졌다. 결국 12월에 타협안이 나왔다. 회사는 회사가 이겼지만 펠츠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동시에 조셉 지메네즈 노바티스 CEO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하면서 이사회가 11인에서 13인으로 늘어났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위임장 대결이라는 약 8개월 동안의 치열한 다툼 끝에 행동주의자 펠츠가 1.5%(35억 달러) 남짓한 지분으로 P&G 이사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펠츠는 실제로는 약 1년 후인 2018년 가을에 이사회에 합류했다.
P&G는 유니레버와 함께 세계 최대의 생활용품과 식음료 생산 업체다. 1837년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양초를 만들던 윌리엄 프록터와 비누를 만들던 제임스 갬블이 동업으로 만들었다. 두 사람은 동서지간이었는데 장인이 합병을 권했다고 한다. 물에 뜨는 비누 아이보리가 대형 히트를 하면서 회사가 급성장했다. 1999년 매출기준 미국 17대 기업이었는데 현재는 45대 기업이고(670억 달러: 삼성전자 2,430억 달러) 약 9만2천 명을 고용한다.
트라이언이 P&G를 공격 목표로 정한 것은 P&G의 부진 때문이었다. 소비재 생산업체 공룡 P&G는 환경친화적 소비자 문화와 관련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에 적응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가격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아마존과 유튜브 때문에 광고도 비효율적이 되어 매출은 감소하고 있었다. P&G의 부진을 틈타 소형 경쟁업체들이 약진했다.
펠츠는 특히 회사의 관료주의와 인브리딩 문화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지 않는 회사라는 것이다. 또, 지난 20년간 회사가 R&D의 부진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전혀 개발하지 못했다고 공격했다. 펠츠가 2017년에 GE의 CEO 이멜트를 축출했던 것처럼 P&G의 CEO 데이빗 테일러(David Taylor)를 축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고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할 목적으로 소규모 볼트-온 M&A 전략을 전개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펠츠는 테일러를 높이 평가했다. 경영진도 펠츠의 혁신안을 존중하는 방향에서 경영전략을 수정했다. 펠츠가 P&G 이사회에 합류한 이후 P&G 실적과 주가는 괄목할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월에 97달러 대이던 주가는 10월에 들어 124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9월 말 펠츠와 테일러는 CNBC의 한 프로그램(Delivering Alpha)에 나란히 출연해 친분을 과시했다. 펠츠가 “우리는 가구 쇼핑을 같이 한다”고 하자 테일러는 “주로 넬슨이 계산한다”고 맞받았다. 펠츠는 다툼은 이미 끝났고 협력과 서로 다른 의견 간 조율이 있을 뿐이라고 정리했다.
이 사건이 해피 엔드로 끝났던 데는 P&G의 CEO 데이빗 테일러의 스타일도 큰 몫을 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테일러는 1980년에 듀크대 공대를 졸업하고 P&G에 입사해서 평생을 P&G에서 일한 사람이다. 2015년에 CEO에 올랐다. 미국 유수의 대기업 CEO의 이력으로는 매우 간단하다. 언론에 공개된 여러 인터뷰 영상을 보면 대단히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펠츠라는 공격적인 사람을 상대해서 끈질기게 싸웠지만 온화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다는 말은 단순한 방송용 멘트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펠츠는 테일러가 지난 2년 간의 전 과정에서 시종 ‘젠틀맨’이었으며 반드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는 강점을 보였다고 칭찬했다. 펠츠가 훌륭한 CEO의 덕목 1위로 꼽는 것이 ‘잘 듣는 사람’이다. 남의 말을 경청해서 좋은 아이디어는 언제나 훔치고 그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행동주의 펀드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대상 회사 경영진이 주주인 자기들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2006년에 KT&G가 칼 아이칸의 공격에 지나치게 고전했던 이유는 경험이 없어서 ‘악성 투기자본’의 말을 일체 무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현대차가 엘리엇을 물리치면서도 상황이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았던 것은 양측간의 대화가 단절되지 않아서다. 행동주의 펀드를 이사회에 까지 들일 것인지의 문제는 별개다. 그러나 이야기는 성실히 들어주어야 한다. P&G 사례의 시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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