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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욜로은퇴] 노후 자산관리의 끝판왕, 상속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0.21 19:29 수정 2019.10.21 19:29

김 경 록 소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흥부가 기가 막혀. ‘흥부전’에서 흥부의 비극은 상속을 형 놀부에게 모두 빼앗겼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놀부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독차지하고 아우 흥부를 집에서 내쫓아 버립니다. 그 시대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상속을 못 받고 힘들게 삶을 꾸려가는 차남들이 흥부전을 읽으며 위로 받았는지 모릅니다.
불과 반세기 전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평균수명이 짧다 보니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린 자녀들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부의 경우 상속을 모두 받은 장남이 동생들을 돌보지 않아 어린 나이에 뿔뿔이 흩어져 힘들게 살게 되었습니다. 1977년 민법에서 유류분(遺留分) 제도를 만든 배경이기도 합니다. 유류분 제도는 법정상속분의 절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 둘과 배우자가 있다면 법정상속비율은 1:1:1.5입니다. 여기서 자녀는 1/3.5의 절반인 14.3%를 유류분으로 받을 권리가 있고 배우자는 21.4%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류분이 있었으면 흥부가 기가 막힐 일은 없었을 겁니다.
상속은 윗대로부터 받거나 아래 세대에 주거나 둘 모두 삶에 중대한 영향을 줍니다.
19세기 유럽은 부(富)의 형성에 상속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상속을 잘 받으면 흥하고 잘 못 받으면 몰락했습니다. 상속세가 없고 일을 해서 버는 돈도 뻔한 지라 재산을 받는 게 부를 형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작가 발자크가 1834년에 발표한 ‘고리오 영감’은 거액의 지참금과 상속에 관한 얘기들이 주를 이룹니다. 소설 중에 보트랭이란 인물은 하숙집의 법학도에게 법관이 되어 돈을 버는 것보다 상속녀(2순위)와 결혼하는 게 훨씬 나은 전략이라고 설득합니다. 대학생을 좋아하는 상속녀의 오빠만 죽으면 1순위가 되니 그 오빠를 청부 살해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합니다.
21세기 한국에서는 재테크의 최고는 효(孝)테크라는 말이 있습니다. 젊을 때 절약해서 돈을 모아 봐야 한계가 있는데 상속을 잘 받으면 목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어서 원하는 만큼 소비하고 대신 시간 좀 내서 부모님 찾아 뵙고 식사 자주 하면서 상속 받는 게 더 현명한 재테크라는 거죠. 여자들끼리 차를 마시는 중에 시부모님 전화를 받자 바로 달려가기도 한답니다. 효가 재테크로 연결되는 셈입니다. 게다가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윈윈(win-win) 게임이지 않습니까?
상속 전략을 잘못 짜서 실패하기도 합니다. 부모들이 집 등의 재산을 미리 자녀에게 주고 자신의 노후를 자녀에게 의탁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입니다. 오죽했으면 국회에서 ‘불효자 방지법’까지 발의되었겠습니까? 현재도 범죄행위나 부양의무 위반시 증여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불효자 방지법은 학대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경우도 반환을 청구할 수 있게 강화한 것입니다. 어쨌든 효도계약서를 쓸 때는 구체적인 사항까지도 하나하나 명시해야 뒤탈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상속 이야기를 하면 ‘일부 돈 많은 사람의 얘기지 내 일이 아냐’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해입니다. 상속 관련된 세금 문제는 돈 많은 사람의 얘기지만 상속은 보통 사람의 문제입니다. 50억, 100억원으로 다투는 거나 5,000만원, 1억원으로 다투는 거나 양상은 같습니다. 최근 상속의 인식도 변하고 있습니다. 일부 재벌들의 가업승계라는 인식을 넘어서, 중산층들이 자녀에게 생활기반을 마련해주면서 나의 노후 자산관리도 잘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 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노후자산의 효율적 관리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나라 상속시장을 보면 2017년 한 해 상속 금액은 36조원이고 피상속인수는 23만명에 달합니다. 앞으로 사망자가 수가 증가하면서 더 확대되겠죠. 그중 과세미달이라 상속세를 안내는 사람이 97%를 차지하고 금액으로는 19조원입니다. 그러니 전체 피상속인 중 3%가 17조원의 재산을 상속하고 세금을 내는 셈입니다. 이 통계에서 보듯이 2017년 현재 상속세는 3%(,7000명)의 문제지만 상속 문제는 전체(23만명)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속은 재산 형성뿐 아니라 노후 자산관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아껴서 자녀에게 상속재산을 남기느냐, 지금 충분히 쓰고 상속재산은 남기지 않느냐, 유산은 증여를 통해 미리 주느냐 아니면 사망시에 상속재산으로 주느냐, 자녀 세대에 남긴다면 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전략을 쓰느냐에 따라 본인의 노후 후생과 자녀의 후생 그리고 가족의 화목이 달려 있습니다.
상속시장에는 주의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유서도 정확하게 써야 분쟁의 소지가 없습니다. 주민등록번호, 이름을 다 적어도 주소가 없으면 안되고 날인 대신 서명을 해도 안됩니다. 녹음을 할 때는 공증인을 옆에 두어야 합니다. 유류분 제도가 암초로 작용할 때도 많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상속재산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녀는 장남에게 모두 주겠다고 유언하면 ‘잘 알겠습니다. 받들어 모시겠습니다’하고는 돌아가시자마자 바로 유류분 청구를 하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부모를 잘 부양하는 자식에게 상속재산을 많이 주겠다는 ‘전략적 상속’도 쉽지 않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자칫하면 남겨진 배우자가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상속재산인 집을 자녀와 나누다 보면 부득이 현금이 없어 집을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2018년에 ‘배우자 거주권’을 인정하여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택은 유산분할에서 제외하여 남겨진 배우자가 거주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상속(증여)은 노후 자산관리의 중요한 축입니다. 본인의 후생, 자녀의 후생, 가족의 화목이 달려 있는 종합예술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상속을 할 때 꼭 필요한 요소가 가족의 화목과 균등한 재산배분이라고 합니다. 이 둘이 동시에 지켜지기 쉽지 않기에 갈등이 내재해 있습니다. 이래저래 상속은 ‘노후 자산관리의 끝판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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