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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자율주행 주식회사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0.22 18:42 수정 2019.10.22 18:42

김 화 진 교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현대자동차 고용안정위원회 자문위원회는 오는 2025년에는 국내 자동차 제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지금보다 최대 40%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대변되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로 조립 부문에서의 부가가치가 크게 감소할 전망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서구에서는 자동차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뿐 아니라 자동차 회사 자체도 자율주행 회사가 될 수 있다는 논의가 나온다. AI(인공지능)의 진화 때문이다.
옥스퍼드대의 존 아머 교수와 호르스트 아이덴뮐러 교수의 최신 논문에 따르면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크고 작게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현대차가 AI 경영을 시작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작은 계열회사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가장 먼저, 자율주행 택시를 운영하는 회사를 들 수 있다. 자율주행 택시의 콜과 배차는 물론이고 요금결제 같은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회사를 알고리즘이 운영하게 할 수 있는데 이 회사를 예컨대 통상적인 운송회사의 자회사로 설립해서 운영한다. 규모가 작고 사업 범위가 제한적이라 최종적인 경영상의 결정을 사람이 아닌 AI가 내리게 할 수 있다.
영국 프랑스를 포함, 세계 여러 나라의 회사법은 자연인이 아닌 법인이 주식회사의 이사가 될 수 있게 한다.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도 회사의 정관으로 이사의 자연인 요건을 배제할 수 있게 한다. 우리 상법이 자연인이 아닌 법인 이사를 인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지만 긍정하는 견해가 있고 자본시장법은 투자회사에 법인 이사를 둔다. 
법인 이사를 부정하는 견해는 이사의 임무가 자연인의 의사와 능력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자본시장법상 법인 이사는 결국 그 법인을 대표하는 자연인이 임무를 수행한다. 그렇다면 법인 이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AI 이사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AI가 능력은 물론이고 ‘의사’를 갖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AI의 기업 경영은 의사결정의 주체를 인간의 선호 감각과 인센티브 감각에 기초를 둔 행위능력자로 상정한 모든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 민사책임과 형벌이 더 이상 법률적 책임의 이행과 법률의 준수를 담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효율성, 부정행위 가능성이 없다는 점, 극단적인 투명성이다.
AI는 게으름을 부리거나 횡령을 하지 않는다. 책임을 물을 일이 없다. 감독 당국의 업무도 경감되고 분쟁도 신속히 해결될 것이다.
자율주행 회사를 매개체로 하면 창업자나 모회사는 자율주행 회사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차단할 수 있다. 특히 그에 필요한 비용이 대단히 낮을 것이므로 아마도 택시 1대 당 하나의 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이 인기를 끌 것이다. 1958년 왈콥스키사건 판례에서 나타난 그대로다. 당시 뉴욕시에는 6,816대의 택시가 있었는데 택시 회사가 2,120개였다.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채권자 측 위험은 기존의 법인격부인론으로 커버된다. 
아머와 아이덴뮐러의 논의에 비추어보면 AI 경영이 우리나라 대기업 그룹의 최상단까지 확산되는 날이 오면 지금처럼 경영자의 책임이나 내부거래, 경영권 승계 문제는 전면에서 사라지고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회사법도 사적인 조직의 효율성과 거버넌스 문제에서 회사라는 조직이 공공영역에서 가지는 의미로 관심의 중점이 이동할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논의는 ‘데이터 거버넌스’에 자리를 양보할 것이다. 
서울대는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내년 3월 문을 열고, 서울대 공대는 내년 2학기에 AI 연합전공을 신설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특유의 스피드로 바로 따라잡을 것이다.
기술 분야의 진척과 보조를 맞추어서 인문사회와 법률, 경영 분야에서도 AI 연구가 확산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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