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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천고마비(天高馬肥)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0.30 18:59 수정 2019.10.30 18:59

배 해 주
수필미학문학회 회원

하늘 天. 높을 高.  말 馬.  살찔 肥.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이다. 곧 하늘이 맑고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을 형용하는 것으로 좋은 계절이라는 말이다.
은(殷)나라 초기에 중국 북방에서 일어난 흉노는 주(周)· 진(秦)· 한(漢)의 삼왕조를 거쳐 육조(六朝)에 이르는 약 2천 년 동안 북방 변경의 농경 지대를 끊임없이 침범 약탈해 온 유목민족이었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군주들은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늘 고심했다. 전국시대에는 연(燕)· 조(趙)· 진(秦)나라는 북방 변경에 성벽을 쌓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기존의 성벽을 수축하는 한편, 중축 연결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흉노의 침입은 끊이지 않았다. 북방의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으로 살아가는 흉노에게는 우선 초원이 얼어붙는 긴 겨울을 살아가야 할 양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방 변경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만 되면 언제 흉노가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戰戰兢兢) 했다고 한다. 한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추고마비(秋高馬肥)· 천고기청(天高氣淸)이란 말로도 쓰여진다.
지금이 바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누렇게 익은 들판에서 추수를 기다리는 벼와 빨갛게 익어가는 과일을 보노라면 누구나 시각이 주는 풍요로움에 젖는다. 이런 풍요를 위해 농부들은 봄부터 들과 밭에서 피와 땀으로 농작물을 가꾸어 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한 해 동안 정성들여 짓은 농작물의 수확을 포기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수확을 하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들리기도 한다.
또 다른 지방에서는 태풍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들판을 아픈 자식을 보듯이 안타까워하는 농부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접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가을이 오면 농작물의 수확량이 많지 않아서 걱정이었지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로는 걱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재배기술의 발달과 단위 생산량이 높아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특정품목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가격이 올라가면 생산자보다 더 많은 소비자를 위해 쉽게 수입을 해버리는 것도 가격 하락에 한몫을 했으리라. 
도회에 살거나 땅 한 평이 없어도 가을이 오면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만은 넉넉해지던 계절이 바로 가을이 아니었던가?
농사를 강조하던 농경시대에서 4차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에 무슨 과거로의 회귀냐고 질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명이 아무리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먹어야 하는 식(食)은 크게 변할 수 없다. 언제 식량이 그 나라의 부를 상징하는 때가 오지 않으라는 법이 없다. 지금도 식량이 준 무기화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농사를 도외시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농자(農者)는 천하지 대본이라던 농경민족의 여유로움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하늘이 높고 말이 살지는 계절, 세상은 풍년인데 왠지 마음은 흉년이다.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이나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도 황금 들판을 보며 세파의 시름을 잠시 잊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가을이 아닌가?
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환하게 웃는 농부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나만의 거창한 바람이 아니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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