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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산올곧문예상 소고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1.25 19:26 수정 2019.11.25 19:26

김 시 종 시인
국제PEN 한국본부 자문위원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은 혼자 많이 이룬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혜택을 많이 끼친 사람임을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쉽게 동의하시리라.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온나라(전국단위)에서 뛰어난 인물이 되자면 나이가 들어도 어려운데, 젊은 나이에 대성(大成)한 사람은 진심으로 한번 우러러 봐야 할 것 같다. 김선식 사기장이 그런 분이다.
필자가 제23회 경상북도 문화상 문학부문 수상자가 된 것은 1983년 11월로 41세 가을이었고, 직장은 당시 문경군 문경읍 소재 문경고등학교 주임교사 시절이었다.
당시 도 문화상 상금은 200만원이었고, 점촌읍 공평4리 논 값은 한 평에 5천원으로 상금 2백만원은 논 두마지기(400평)를 살 수 있는 제법 거금(巨金)(?)이었다.
도 문화상 수상시집은 시문학사에서 펴낸 김시종金市宗 다섯 번째 시집 ‘보랏빛 목련’으로 표지그림은 김환기 화백 그림이었다.
도 문화상 시상식에는 온 가족이 초대되어 참석했고, 평생 유복자를 키운 홀어머니가 참석하셔서, 조그만 성공을 거둔 못난 아들 때문에 감명이 크신 듯 했다. 문경고등학교 교사로 만기(5년)전에 타의로 날려 갈 뻔 했지만 도 문화상 수상자가 되는 바람에 역풍(逆風)을 막고 근무만기기간인 5년을 무사히 채울 수 있었다.
5년 만기가 되어 문경군 점촌읍 문경공업고등학교로 전출(전근)했다가 호계중학교를 거쳐 4년 뒤 다시 문경고등학교로 다시 발령을 받았는데(1990년) 1년 후에 서울신문 제정 향토문화대상 현대문화부문 본상 수상자로 결정되어(심사위원 중진시인 구상선생 등 5명 복수심사), 상패와 상금 2백만원을 받는 가슴 벅찬 성공을 거머쥐었다.
이 때 필자의 나이는 만 49세였다. 경상북도 문화상 수상으로 도 단위를 제압하게 되었고(41세 시절), 8년 후엔 서울신문 향토문화대상(현대문화분야 본상수상)으로, 전국을 제패하게 되었다. 40대의 젊은 나이로 지역(도단위)과 전국을 제패했지만, 취기는 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차분하게 자중자애를 견지했다.
메뚜기도 오뉴월이 한철이라던가? 필자의 전성시대는 40대(代)였다. 지금은 80을 바라보면서 후진들이 수상하는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뒤늦은 그들의 성취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진작부터 필자는 문학상을 제정하여 내 이름이 새겨진 상패(상장)를 엄숙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태전에도, 젊지만 저력이 넘치는 김선식(49세) 최고장인 및 사기장(인간문화재)의 제의로 미산올곧문예상 운영회장직을 맡아 올해로 세 번째 시상식을 앞두고 있다.
작품으로 성공한 중견 문예인을 필자가 심도 있게 발견(발굴)하여 공정한 선정으로 시상하고 있다.
탁월한 수품을 갖춘 김선식 인간문화재(사기장)의 청화백자 팔각소병 1점을 상패와 같이 시상품으로 전달하고 있다. 능란한 수품의 김선식 사기장은 인품과 수품이 둘 다 국보급이다.
김선식 인간문화재가 제정한 미산올곧문예상이 이 땅에서 가장 신뢰받는 문예상이 되도록 필자(운영회장 김시종)와 김선식 사기장(후원회장)이 더욱 분발할 것이다.
미산올곧문예상 수상자의 빛나는 창작이 국민행복 지수를 확실하게 높여 주실 것을 우리 모두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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