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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철면피(鐵面皮)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2.09 19:09 수정 2019.12.09 19:09

배 해 주
수필가

쇠 鐵.  낯 面.  가죽 皮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수치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말로도 쓰인다.
중국에 왕광원(王光遠)이란 사람이 있었다. 학재가 뛰어나 진사(進士) 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출세욕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그는 고관의 습작 시를 보고도 “이태백(李太白)도 감히 미치지 못할 신비롭고 고상한 운치가 감도는 시”라고 극찬할 정도로 뻔뻔한 아첨꾼이 되었다. 아첨할 때 그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았고 상대가 무례한 짓을 해도 웃곤 했다.
한번은 고관이 취중에 매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를 때려 주고 싶은데, 맞아 볼 텐가?”라고 하자 “대감의 매라면 기꺼이 맞겠습니다. 자 어서 때리시지요”라고 대답했다.
고관은 사정없이 왕광원을 매질했다. 그래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동석했던 친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질책하듯 말했다. “자네는 쓸개도 없나? 만좌(滿座) 중에 그런 모욕을 당하고서도 어쩌면 그토록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자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잘 보이면 나쁠 게 없지”라고 말했다.
친구는 기가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광원의 낯가죽은 두껍기가 열 겹의 철갑(鐵甲)과 같다’라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우리네 삶에도 간혹 왕광원과 같은 철면피가 있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주위의 시선은 염두에도 없다는 듯 오직 자신을 내세우며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상대가 1인인 경우는 그나마 눈감고 듣고 보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기만의 의사를 표현하는 무례는 정말 후안무치다. 상대방의 반응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경우다.
얼굴 두꺼운 사람은 자신의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우쭐한 기분으로 뱉어내는 말, 상대의 가슴에 비수가 되기도 하지만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향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鐵面皮는 민초들 보다 정치인에게 많다. 유권자를 상대로 하거나 타 당을 상대로 행해지는 철면피한 언어와 행동들, 우리 정치풍토에서 사라져야 할 것 중에 하나다. 누가 들어봐도 아닌 것을 우기는 기이한 모습들 이런 것들이 우리 정치 수준을 짐작게 하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내일 아니 잠시 후면 알 수 있는 것을 아니라고, 모른다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모습들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얼마 전 기자회견이란 자리와 청문회란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철면피를 경험한 바 있다. 이를 보고 백성들은 얼마나 분개했던가? 돌아서면 들통이 나고, 진위가 가려지는 것들도 “나는 하지 않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로 일관했다. 위법이 아니라는 것만을 강조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법은 최소한 규제이고 그 저변에는 도덕과 양심이 있다. 철면피에게는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도 없는 것인가? 특히 젊은 학생들의 비판을 도외시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우리 어른들이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국민의 수준을 우습게 보는 세상의 철면피를 향해 우리도 할 말은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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