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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상가지구(喪家之狗)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9.12.29 18:59 수정 2019.12.29 18:59

배 해 주
수필가

초상 喪. 집 家.  갈 之.  개 狗.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실린 말인데, 상갓집 개(주인 없는 개)란 의미는 여위고 기운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얻어먹을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춘추시대 말, 대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유교의 비조(鼻祖)인 공자(孔子)에 관한 얘기로, 노(魯)나라 정공(定公) 때 대사구(大司寇) 직책으로 재상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던 공자는 왕족인 삼환에게 배척을 당하여 노나라를 떠나고 말았다.
그 후 공자는 십수 년간 자신이 이상으로 상으로 삼는 도덕 정치를 펼 수 있는 나라를 찾아서 여러 나라를 순방했으나 받아 주는 군주가 없었다.
56세 때 정(鄭) 나라에 간 공자는 어쩌다가 제자들을 놓치고 홀로 동문 옆에 서서 그들이 찾아오기만 기다렸다. 스승을 찾아 나선 자공(子貢)이 한 행인에게 공자의 인상착의를 대면서 묻자 그 행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동문 옆에 왠 노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마는 요(堯)나라 임금 같았고, 목은 순(舜) 나라의 우(禹) 임금 때의 현상(賢相)인 고요(皐陶)와 같았으며, 어깨는 명재상 자산(子産)과 같았소. 그러나 허리 아래로는 우 임금에게 세 치쯤 미치지 못했고, 그 지친 모습은 마치 상갓집 개(喪家之狗) 같습니다”라고 했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동문으로 달려간 자공은 공자를 만나자 방금 행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고했다. 이야기를 듣고난 공자는 웃으며 말했다. “용모에 대한 형용은 들어맞는다고 하기 어려우나 상갓집 개와 같다는 표현은 과연 딱 들어맞는 말이다”
정 나라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는 그야말로 상갓집 개와 같이 초라한 모습으로 기운 없이 노나라로 돌아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지금도 상갓집 개 같은 모습을 종종 본다. 노인들이 모여서 소일하는 경로당이나 공원 한구석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을 두고는 상갓집 개 같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목적의식 없이 사람이 모인 곳이면 기웃거리는 이가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란 자치제가 되면서부터 선거와 관련되어 이쪽저쪽을 오가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농협, 산림, 수협 등 각종 조합장 선거, 마을금고나 사회단체장 선거도 예외이지 않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 때에도 상갓집 개는 나타난다.
선거와 관련하여 어느 후보나 진영에서 나름의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어떤 후보가 그 단체나 조직,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물로 판단하고 아무런 댓가 없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를 지지하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다만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나 지지 없이 혈연, 학연, 지연을 핑계 삼아 밥 한 그릇, 용돈 몇 푼을 위해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다. 이는 사회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총선이 서서히 다가오자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며 상갓집 개처럼 구는 이들이 있다. 당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출마한 후보자는 상갓집 개라고 도외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에게는 상갓집 개는 달콤한 유혹이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 외에 자기의 주머니에 수많은 표가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을 하고, 또 자신을 거두어 주지 않으면 필연 낙선이라는 으름장도 곁들인다. 그러면 후보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상갓집 개에게 먹이를 던지는 것이 작금의 현상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국가가 진일보하려면 이제 우리 사회에도 상갓집 개들이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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