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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漢字로 보는 世上] 우공이산(愚公移山)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20.01.05 18:13 수정 2020.01.05 18:13

배 해 주
수필가

어리석을 遇.  귀 公.  옮길 移.  메 山.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실린 글로서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아무리 큰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마부작침(磨斧作鍼). 수적천석(水滴穿石). 적토성산      (積土成山)이란 말로도 쓰인다.
춘추 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문인들이 열자의 철학 사상을 기술한 탕문편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먼 옛날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 기슭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의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큰 산이 집 북쪽을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큰 불편이 있었다. 그래서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저 두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모한 짓이라며 반대했다.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입니까? 그리고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릴 거냐”고 하자 우공은 “발해(渤海)에 갖다 버린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버리기 시작했다. 발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知?)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머지않은 노인이 정말 망령”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낳아 자자손손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은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고 태행산은 삭동(朔東) 땅에, 왕옥산은 옹남(雍南)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그래서 두 산이 있었던 기주(冀州)와 한수(漢水), 남쪽에는 현재 작은 언덕조차 없다고 한다.
우리의 면한 과제는 남북문제로 큰 산을 옮겨야 하는 일보다도 어쩌면 더 크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조급하다. 천천히 하나하나 돌탑을 쌓듯이 해결해야 한다. 급하게 쌓아 올리면 작은 흔들림에도 금방 무너지고 만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많은 분열과 합병을 거듭했다. 삼국시대가 그랬고 후삼국이 그랬다. 어지러우면 분열되었고 여러 사람이 오랜 세월 공을 드리면 통일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통일이 없었다.
또 수 백년 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과학과 무기가 발달해도 금방 될 것이 있고 되지 않을 것이 있다.
정부의 대북 정책은 단시간 내에 무엇인가 실적을 내어야 한다는 조급증을 읽을 수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동족끼리 수 백 년도 참아 왔는데, 5년 임기 내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함은 일을 그르치고 만다.
작금의 대북 정책을 보면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다. 무엇이 그렇게 급하고 아쉬운가?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통일이란 거대한 산을 옮기는데 흙 한 삼태기 옮긴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번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지 말아야 제대로 목표한 산을 옮길 수 있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두드리면 우공이 태행산과 왕옥산을 옮기듯 이번 대통령이 조금 이루고 다음, 다음, 그렇게 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대북 정책에 우공이산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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