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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사이버공간의 비극, 최고의 백신은 관심

안진우 기자 입력 2020.04.15 20:27 수정 2020.04.15 20:27

정 영 희 경감
대구 동부서 사이버수사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평범한 일상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이라는 생경한 이름의 사건은 전 국민을 또 한 번 충격과 분노에 빠트렸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모바일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하고 길들여 마치 ‘노예’처럼 학대한 성폭력범죄를 일컫는다.
그들은 텔레그램에 여러 대화방을 개설하여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놀이로 여기며 보이지 않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을 이용하여, 정말 인간의 짓인지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가히 경악스러운 행위를 일삼아 왔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물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가 물질만능주의와 그릇된 성의식, 도덕성 부재 등 얼마나 짙고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여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익명성 뒤에 숨은 채 오로지 물질적·성적 욕구의 충족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이 비극의 드라마를 단절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개개의 인간은 성과 나이를 떠나 모두 고귀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해야 할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로, 이번 성착취물 사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나와 우리의 가족,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의 일임을 모두가 경각해야 한다.
주변을 향한 작은 관심과 눈길, 지금도 어디선가 디지털성범죄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은 또 다른 나, 혹은 우리의 가족과 친구일 수 있다는 사실, 또 그 누군가의 고통과 피해는 결코 그들만의 잘못도 그들의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바른 사회, 살고 싶은 사회,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관심과 실천이 절실한 때이다.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우연히 디지털성범죄에 발을 딛게 된 누군가의 용기는 이 비극을 막는데 더욱 각별한 단초가 될 수 있다.
‘내 일도 아닌데 뭘.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하겠지. 신고해봤자 괜히 피곤하기만 해’라는 생각은 버리고, ‘나부터, 내가 먼저, 이것도 나의 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을 모아 우리 모두가 가상공간의 범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날의 도래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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