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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태영호 대사의 꿈을 존중한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1.17 15:30 수정 2017.01.17 15:30

우리는 봄의 길목에서 느닷없이 닥치는 추위를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고 쉽게 정의하고 말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계절을 준비해가는 자연의 깊은 지혜와 오묘한 이치를 발견하게 된다. 계절이 철 따라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변화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보란 듯이 추위가 맹위를 떨치곤 한다. 살다보면 좋은 일이 있는가 싶으면 나쁜 일이 생기는 이치 또한 자연의 운행에 기인한다. 그러기에 선현들은 好事多魔 라 하여 좋은 일이 생기면 마음 닦기를 게을리 하지를 않았다. 들꽃을 일러 민족의 꽃이라 이르는 이유 또한 이와같다 하겠다. 겨레의 위상을 꿋꿋이 지켜온 끈질긴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격렬하지 않으면서도 나중에 가슴을 만져보면 재가 남을 만큼 불꽃이고, 소매를 스치듯 밋밋한 것이나 헤어진 뒤 심장이 으깨져 핏물을 쏟을 만큼 감동적이기도 하다. 화끈한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것도 만남이냐 싶을 정도로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후일에는 문득문득 아련하게 그리운 운명적인 사랑의 꽃일수도 있다. 유명시인의 한 말씀이 가슴을 친다. 너는 언제 연탄재만큼 따뜻해 본적이 있는가?. 너가 내이름을 불러줬을 때 나는 비로소 꽃이 되었다 했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또한 이런 것 아닐까요? ‘작은 초가라서 처마가 너무 짧아 무더위에 푹푹 찔까 몹시 걱정돼, 서늘한 솔잎으로 햇살을 가려 한낮에도 욕심껏 그늘 얻었네, 새벽에는 이슬 맺혀 목걸이가 되고 밤에는 바람 불어 음악소리 들리네, 그러나 불쌍해라! 정승 판서 집에는 옮겨 앉는 곳마다 실내가 너무 깊어 풍월이네.’ 조선조 제일의 시인이라 칭송받는 권필(1569-1612)선생의 松棚(송붕)이란 詩의 해설본이다. 송붕은 시원한 그늘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이면 이슬이 맺히고 밤이면 솔바람소리 시원하여 마치 귀족들이 차고 다니는 목걸이 같고 현악기의 합주처럼 들린다고 했다. 이 詩속에는 시대의 역사가 있고, 당대의 문화가 있다. 또 그 이면에는 보석 같은 문학과 철학이 숨쉬고 있다. 몇 해 전인가 어느 척추장애인의 시집 출판기념회의 기사를 읽고 가슴 뭉컬했던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에 선하다. 소외계층의 아픔이 하도 절절해 복지의 실태를 조금이나마 알리고자 기사내용을 인용해 신문지상에 소게한 적도 있었다. “아픈 몸도 다 버리고/나무 지팡이도 다 버리고/가벼운 몸으로/새처럼 자유롭게/ 하루만 단 하루만이라도/훨훨 날아봤으면.” 시인의 딸이 어머니의 시를 낭송하자 시인도, 딸도, 시집 출판을 축하하러 온 동네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참지 못해 마을회관은 울음바다가 됐다고 기자는 전했다. 전남 진도군의 척추장애 시인 주경자(53)씨의 출판기념회의 뒷이야기 이다. 산골 여인 주경자의 ‘하루만 날아봤으면’이란 제목의 첫 시집을 축하 하기위해 주민들이 열어준 조촐한 잔치는 가슴이 벅차올라 뭉게질 정도로 대 성황이였다. 등이 구부정 굽고 다리 근육이 퇴화한 병까지 겹쳐 걸을 수 없는 주씨는 “아버지가 차라리 죽어라며 어린 나를 물 한 방울 안 먹이고 방에 방치하여 영양실조로 장애가 됐다”며 자초자종을 설명한 주씨는 걸을 수 없어 마당을 무릎으로 마당을 기어 단니며 축하인사를 했다. 욕지거리를 퍼붓던 아버지가 미워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녀는 사춘기 때. 구두 신은 여자를 보고 죽기 전에 꼭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저렇게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걷지 못 할 바엔 차라리 죽어버리자며 여러 번 자살을 시도 하곤 했다. 주씨는 딸을 낳은 후 부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작고 하찮은 몸뚱어리에서도 소중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랐다. 자식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이 살겠다 다짐했다. 그런 주씨에게 남편 강금성(50)씨는 하늘이 준 ‘종합선물셋트’였다. 주씨는 “집밖에 나가지 못해 창문을 열어놓고 부르던 노랫소리가 윗마을 오두막집까지 들렸고 그 노래를 듣고 찾아온 남편인 강금성씨와의 인연으로 둘은 결혼했다. 주씨는 암종양의 판정을 받은 환자다. 주씨의 유일한 치료약은 남편 강씨가 산에서 캐다주는 버섯달인 물이 전부다. 그녀는 불편한 삶의 곡절을 모두 시로 녹여낸다. 이날 인사말에서 그녀는 시 한수로 답례했다. “울고 웃는 인생이라/세상을 한탄할 일도 많았지만/육신이 허술하면 마음으로 살고/마음이 허술하면 육신으로 견기며 살아 /살아 있으매/사랑을 노래할 수 있고/살아 있으매/인생을 노래할 수 있어 나는 언제든 행복하다”했다. 그녀는 詩 한 수로 힘든 세월을 살아가는 모든 인들을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한편의 파노라마였다. 그 길 위에 홀로이 서 있는 태영호 대사. 사랑하는 자식과 조국을 지키기 위한 그의 마지막 용단을 크게 존중한다. 좀 늦었다 싶어도 이 길 위를 또한 뚜벅뚜벅 걸어가는 용기있는 男子이고자 고집하는 태 대사의 아버지로서 내일을 같이 지켜보자는 것이 나의 간절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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