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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사에 눈길을 주자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1.19 15:03 수정 2017.01.19 15:03

언론의 우민(愚民)정책이 너무 지나치다. 기자들은 눈이 나빠, 촛불만 보이고, 대형태극기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촛불 숫자보다 태극기의 숫자가 더 많았는데도 신문과 TV엔 촛불만 크로즈업되고, 태극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언론이 단단히 고장이 나서, 몇 달 전부터 선동보도·편파보도가 일상이 되고 말았다. 자동차가 브레이크 고장이 나면 걷잡을 수 없는 큰 사고를 낸다. 이 나라의 신문과 TV가 단단히 고장나서, 국가전복으로 이어질까봐, 나는 솔직히 좌불 안석이다. 정치가들도 국가의 존망엔 관심이 없고, 눈앞의 당선에만 몰입한다. 정치가가 갖춰야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국가관이 분명하고 애국심이 투철해야 한다. 요사이 일부 대선주자가 주장하는 걸 보면, 대한민국의 멸망을 재촉하는 말로 가득하고, 어리석은 국민들에게 믿음 없는 달콤한 말로 최면을 걸고 있다. 시인이자 논객(論客)인 필자가, 정치가제현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애견가가 개를 사랑하는 만큼만, 국가와 국민을 사랑해 달라고 말이다. 이 땅의 정객들에겐 나의 주문이 너무 부담스러울게 분명하다. 요사이 이 땅 국민들도 어리벙벙한 정치 현실에 정신이 나가, 심각한 정치무관심증에 걸렸다. 엿장수를 해도, 엿목판은 있어야 하는데, 나라가 잘못되어 망하고 말면, 국민들은 당장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오늘의 정치현실에 대해, 국민제현은 뜨거운 관심을 갖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쏟아야 한다. 일본에게 나라를 잃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선열의 애국정열을,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재현해야 한다.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조국을 포기해선 안된다. 국가의 현실과 장래에 대해 무관심해선 안 된다. 미워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 무관심한 것이다. 무관심은 불행과 비극의 시발점이다. 요사이 특검에서 ‘블랙리스트’조사가 한창이다. 우리 국민들이나 정객들 중엔 ‘블랙리스트’의 진실에 대해 너무 캄캄하게 모르고 있다. ‘블랙리스트’가 수면에 떠오른 것은,M당의 D의원이 ‘블랙리스트’를 폭로한 것이다. D의원이 ‘블랙리스트’를 입수한 것은, 내부자의 제보일 가능성이 높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보다, 이 땅 국민들은 ‘블랙리스트’의 진실을 너무 모르고, 분노만 하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누구가 작성했느냐 보다, 실린 내용의 진위(진실·허위)가 주제 핵심이라 본다. 문예지원금을 받는 수혜자나 수혜단체는 순수한 예술 창작활동을 해야지, 특정 정파의 이념이나, 폭력을 선동하여 사회불안을 조송하는 경우에, 가가 절대로 지원해선 안된다. 구체적으로 정부 활동은 순수한 예술 활동과는 무관한 것이다. 문예지원금 수혜자는 아땅히 뛰어난 창조적 예술 활동과 숭고한 예술 정신을 발휘하여, 국민 정신과 국민 정서 함양을 촉진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아니라, 예술을 빙자한 편파적 일탈행위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사정을 알고 보면, ‘블랙리스트’작성은 범죄가 아니라, 공정한 업무관리라 할 수 있다. 일탈행위는 적법적이고, 규제는 불법이란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목수는 장도리를 잘 다루는 숙련공 이다. 목수가 벽에 못을 박는데, 장도리를 사용하여 못이 제 자리에 박혀야 한다. 목수가 장도리를 잘못 사용하여, 벽에 박혀야 할 못이 튀어, 목수 눈깔(?)을 까는 것은 넌센스다. 반정부 예술 활동은, 적국의 침략과 같이, 국가존망에 직결된다. 예술인에 대한 문예지원금 지원 못지 않게 적법한 결과 관리가 꼭 있어야 한다. 규제 없는 자유는 일탈행위다. 예술 활동도, 적법한 관리도, 국익에 해를 끼쳐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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