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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조선시대 꽃 기르기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2.23 15:43 수정 2017.02.23 15:43

얼마 전 국민여가활동조사가 발표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미부문을 보니 반려동물 기르기는 포함되어 있지만 식물 기르기는 빠져있다. 일본의 여가활동백서를 보면 전 국민의 4명 중 한명이 꽃·식물 기르기를 한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 기르기를 싫어하나?조선시대 꽃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즉, 꽃을 기르거나 감상하는 것이 세상을 이치를 알아가는 계기라는 것이다. 꽃 기르기에 조예가 깊었던 가드너로서 조선 전기 화훼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저술한 강희안(1417∼1464)은 꽃기르기가 격물치지할 수 있는 계기, 즉 꽃을 기르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아간다고 했다.조선 전기 성리학의 정립에 기여한 이언적(1491∼1553)도 꽃을 심으면서 ‘대자연의 이치를 더듬고’자 했으며 17세기 문신 황혁은 ‘천성을 기르는 것과 꽃을 기르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꽃기르기가 격물치지의 수단임을 강조하였다.전란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선 중기 일본에 간 강항(1567 ~ 1618)이나 청나라에 간 김상헌(1570~1652)에게 담장 밑에 부모님과 심었던 꽃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왜란 중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귀향한 조호익(1545∼1609)이나 정경세(1563∼1633)가 심은 장미나 석창포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 피폐했던 생활 속에서도 꽃은 언제나 그들 곁에 있었던 것이다!18세기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조선에도 가드닝 붐이 일어나게 된다. 조선 후기 16주제의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의 저자 서유구(1764∼1845)는 오관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입(口)만 기르는 일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허(虛)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실(實)을 기르는 근원이다’라고 하면서 농학(본리지)과 채소원예학(관휴지) 다음으로 화훼원예학(예원지)을 저술했다.즉, 쌀과 채소로 실용적인 생활이 가능한 후에는 꽃기르기를 통하여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이다.조선시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가드닝 마니아였던 정약용(1762∼1836)은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는 하지만, 꽃을 보고 기르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 일로서 아무리 과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고 ‘열매가 있는 것은 입과 몸을 길러주고, 열매가 없는 것은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해주어 이 모두가 사람을 길러준다.굳이 형체만 기른다면 정신이 굶주리게 된다’ 하면서 취미로 꽃식물기르기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최근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화훼의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얼마 전 모은행 앞에는 선물로 화분을 받지 않겠다는 글귀도 등장했다고 한다.화훼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시급히 도입해야 할 방안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한편, 이런 때 일수록 화훼의 이용확대를 위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취미나 문화생활 속에 꽃기르기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만 주는 이의 소중한 마음을 담은 선물로 분화나 절화를 자연스레 구입할 것이고 집안이나 사무실의 생활 속에서 꽃을 기르거나 즐기기 위해서 화훼를 사게 될 것이다. 또한, 꽃으로 장식된 상업공간의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생겨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화훼장식을 하게 될 것이며, 꽃이 가진 심신의 치유 가치를 사회 전반이 공유하고 있어야만 원예활동이나 산물을 활용하는 의료복지기관이 늘어날 것이다. 조선 말기의 궁핍과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의 참화 후 목표만을 좇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養口體)’에 치우치다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마음을 기르는(養神心) 꽃기르기’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다시금 우리네 생활 속에 자리 잡아서 국민의 아름다운 마음과 심신 건강을 가져다 주게 될때 화훼산업은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속에서 ‘꽃들에게 희망’의 싹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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