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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그 누가 ‘春來不似春’이라고 했나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3.02 15:26 수정 2017.03.02 15:26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봄이다. 봄이라도, 꽃을 봐야 알짜 봄이다. 봄이면, 동백이 제일 먼저 봄이 왔다고 알려준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선운사(禪隕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禪隕寺 洞口) 시(詩)는 어차피 오독(誤讀)의 역사이니, 여기선 미당의 시심(詩心)이 자연의 순환보다 빨랐는가! 이렇게 읽어봤다. 어제까지 가만히 있던, 어느 골목길 어귀에서 메마른 그 가지에, 오늘 매화가 연두색깔 같은 하늘을 이고 꽃봉오리를 열어, 환한 ‘등(燈)불’을 켜들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동백이 가면, 매화가 온다. 매화가 간 그 빈자리엔 산수유가 바짝 따른다. 그리곤 개나리가 뒤를 잇는다. 그다음엔 벚꽃이다. 진달래가 흐드러지면, 철쭉이다. 자연의 순리는 꽃을 알리지만, 왠지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동방규(東方虯) 소군원(昭君怨) 시의 한 구절은 이렇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하지만 꽃은 피고만 있으니,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피되, 말만 무성한, ‘票퓰리즘’의 잔치 꽃뿐이라서 그런가. 리영희의 말에 따르면, 옛날 공자(孔子)는 한 제자한테서 만약 제왕이 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공자는 서슴지 않고 “바른말을 쓰도록 백성들을 가르치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른바 정명론(正名論)이다. 정명은 관념(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이다. 인식은 관념을, 관념은 개념을, 그리고 그 개념을 담은 용어가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상대방에게 관념표상을 일으켜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제나라 경공이 이상적인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답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답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 원인하여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는가. 공자의 정명에서, ‘이름값도 못한 이들’에게도 기인하는가. 지금의 시국을 읽으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딱 들어맞다. 봄 같지 않은 이유가 또 있다. 언론매체를 봤다하면, ‘답지 않았다’는 그 소리뿐이다. 그 소리의 화자(話者)에 청자(聽者)는 괴롭다. 피로도만 높다. 이 탓에 또 국민들은 봄이 와도, 또 ‘춘래불사춘’이다. 정치의 ‘등촉(燈燭) 같은 봄꽃’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또는 정치인들 끼리)들의 분출하는 갈등을 슬기롭게 조정해 타협과 설득함이다. 협상함이다. 그래서 정치는 말이 아닌, 고난도의 예술이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전문 관료는 데마고그(demagogue/민중 지도자 또는 선동가)가 아니다. 관료가 정치적인 데마고그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대체로 나쁜 데마고그가 되고 만다. ‘답지 않은’사태에서, 나쁜 데마고그가 참 많았다. 임시정부 수립이후에서 지금까지 자칭(自稱) 타칭(他稱)의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 나라에 오갔다. 그 중엔 시민항거로 조국의 땅에서 천수를 누리지 못한 정치인이 있었다. 비운과 불명예로 죽은 정치인도 있었다. 이때에 되레, 정치인들이 아닌, 독재에 항거한 민중영웅만 탄생시켰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봄을 가져다준다. 봄엔 또 꽃이 핀다. 피지만, 그렇지만은 않는 법인가 한다. ‘年年歲歲花相似(년년세세화상사)/해마다 피는 꽃은 다를 게 없지만/歲歲年年人不同(세세년년인부동)/ 해마다 꽃을 반기는 사람은 같지가 않구나.’(劉廷芝의 시 ‘대비백두옹 代悲白頭翁’) 그렇다. 때마다 정치 개화(開花)의 계절은 온다. 스스로 국민의 꽃이라고 우기는 정치인들이 오고 있지만, 꽃답지 않은(을) 정치인들이 많음에 따라, 해마다 꽃은 피건만, 국민들은 괴롭다. 꽃답지 않은(을) 정치인들이 지금 북새통을 벌이고 있다. 꽃의 은유로 말하자면, ‘화상사’(花相似)에다 ‘인부동’(人不同)일뿐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거리가 없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소문난 정치판의 말잔치에 국민들은 먹을거리가 없기에, 날로 야윈다. 국민은 지금 배고프다. 일부 정치인들의 말을 들으면, 격식은 있으나 품격은 없다. 감동도 없는 모양새이다. 국민들은 격식보단, 감동을 먹고 싶다. 중국 남송시대의 애국시인 楊萬里(양만리)의 한작(寒雀)이란 시에 ‘참새가 뛰듯이 크게 기쁘다’는 뜻의 흔희작약(欣喜雀躍) 구절이 있다. 국민들은 봄볕과 봄꽃을 보면서 흔희작약하고 싶은 것을 정치인들은 왜 그토록 모르는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燕雀安知鴻鵠之志(연작안지홍곡지지)도 있다. 뜻은 ‘연작(제비와 참새)이 어찌 홍곡(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 정치판에 제비와 참새는 물러가라. 대붕(大鵬)을 은유하는 홍곡은 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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