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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경의 정월(正月) 세시풍속

오재영 기자 입력 2022.02.05 11:15 수정 2022.02.10 10:13

이만유 전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

달집태우기

복조리

임인년 설날을 맞아 우리 조상들이 문경지역 생명의 젖줄인 영강과 금천유역에서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 삶의 터전 위에 남긴 고유전통문화 중에 ‘문경의 정월 세시풍속’을 알아보았다.

‘설날’에는 옛날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었던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아이들은 설날 아침에 꼬까옷 설빔을 차려입고 친족이 모두 모여 종갓집부터 차례를 지낸 후 세찬으로 음복을 겸해 아침 식사를 하게 된다. 

식사 후에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면 덕담과 함께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었다. 궁한 시절이라 용돈을 받기 어려웠는데 1년을 기다려 온 아이들은 신이 나 친척과 이웃 어른에게도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 오후에는 온 가족이 산소를 찾아 성묘했다.

‘복조리’는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누군가 모르게 대문 안에다 조리 한 쌍을 갖다 둔다. 값은 며칠 후 받으러 온다. 이 복조리에 엿, 돈, 김밥, 성냥 등을 넣어 두는데 엿은 엿처럼 재산이 늘어나라는 뜻이고, 돈은 자꾸 모여 부자가 되라는 뜻이며, 김밥은 볏섬을 뜻해 농사의 풍작을, 성냥은 불처럼 활활 일어나 잘 살게 해 달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 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기도 했다.

‘앙괭이(夜光鬼)’는 설날 밤에 몰래 찾아와 제 발에 맞는 아이의 신을 신고 간다는 속설의 신(神)인데 신을 도둑맞은 사람은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하여 설날 밤이면 앙괭이가 신을 찾지 못하도록 감추어 두고 잔다. 앙괭이를 막기 위해 금줄을 치고 대문이나 높은 장대에 체를 걸어 두는데 호기심이 많은 앙괭이가 체를 발견하고 체 눈이 몇 개나 되나 세어 보다가 눈이 너무 많아 세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세기를 거듭하다가 그만 날이 밝아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되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정초(正初) 금기 중에 여자들은 초하룻날 외출을 삼가야 하고, 키가 큰 사람이 먼저 들어오면 상치가 잘 자란다고 좋아하고, 상을 당한 상주는 정월 대보름 안으로는 남의 집에 가기를 삼가고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안택고사(安宅告祀)’는 정월 중 대개 보름 전에 길일을 택하여 지낸다. 무당을 불러 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시루떡과 정수를 올리고 조왕과 성주신에게 집안의 평안과 부귀, 풍년을 기원한다. 이때 가족들은 목욕재계하고 집 앞에 황토를 뿌린다.
  
정월(正月) 대보름날은 오곡밥 먹는데, 여러 집의 밥을 먹으면 1년 내내 좋은 일이 계속되고 농사도 풍년이 든다고 하며 ‘오곡밥을 아홉 집 이상 먹고, 남자들은 나무 아홉 짐을 하고, 여자들은 삼 아홉 광주리를 삼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즈음도 가까운 이웃끼리 오곡밥을 나누어 먹는다.

또 ‘개보름’이라 해서 정월 보름날에는 개밥을 주지 않는 풍습이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날 개한테 밥을 주면 그해 여름에 파리가 꾀고 개가 마른다 하여 개를 굶기는데 ‘개보름 쉬듯 한다’고 하는 말이 이 풍습으로 생긴 말이다.
 
‘용알뜨기’란 것이 있다. 정월의 첫 용날이나 대보름날 새벽 첫닭이 울기 전후하여 주부들은 샘에 가서 물을 뜬다. 전날 밤 용이 우물 속에 알을 낳는데 이 물 뜨는 것을 ‘용알뜨기’라고 한다. 이 물로 보름날 아침밥을 지으면 그해 풍년과 가정에 운수가 좋다 한다. 제일 먼저 떠야 효험이 있다고 하여 경쟁이 심하였다.

그리고 ‘부럼’은 대보름날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땅콩, 호두, 잣, 밤, 은행 등 딱딱한 것을 깨물어 먹는 것을 말하는데 부럼을 깨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첫 부럼은 깨물어서 마당에 던져 버린다. 또 ‘귀밝이술(耳明酒)’이라 해서 이날 아침 식사 전후하여 집에서 담근 찬술을 마신다. 이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 그해에 좋은 소식을 빨리 많이 듣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지역은 예부터 농악이 유명했다. 정월 대보름이면 농악대가 풍년을 기원하여 여러 가지 곡식 이삭을 벼 짚단에 싸서 세우는 장대인 ‘볏가릿대’를 세우기도 하고, 집집이 찾아다니며 지신을 달래어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풍작 및 가정의 복을 축원하는 ‘지신밟기’를 해준다. 이때 쌀, 떡, 실, 돈 등과 촛불을 켜 놓은 고사상인 ‘꽃반’을 차려놓는다. 지신밟기를 꽃반이라고도 한다.

정월 대보름달이 뜰 무렵에 동산에 올라가 절을 하고 소원을 비는‘달맞이’를 하였고 ‘달점(月占)’이란 것을 보는데 커다란 양푼에 물을 떠 놓고 거기에 거울을 넣어 달을 비추어 달이 둥그렇게 뜨면 그해에는 풍년이 든다. 또 달의 색이 빨강, 노랑 등 색색으로 나오는데 이때 물색이 빨갛고 고우면 그해 신수가 좋다고 한다.

‘더위팔기’는 보름날 아침,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면 ‘내 더우’, ‘내 더위 사 가게’하고 팔아 버린다. 그래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여름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 반면 더위를 산 사람은 더위에 시달린다고 한다.
 
‘걸립’은 농악의 일종인 걸립놀이가 행해지는데 걸립패가 집에 들면 주인은 반갑게 맞아 마당 가운데 자리를 깔고 반에 양푼, 됫박, 말, 식기 등에 곡식이나 돈을 담아 정성껏 차린다. 이렇게 모인 것들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정월 첫 뱀날인 사(巳)일에는 썩은 새끼에 헌 고무신을 매어 불을 붙여 ‘뱀 치자! 뱀 치자! 외치면서 삽짝 밖에서 태우는 행사인데 뱀이나 독충의 침입을 막는 주술행위이다.

‘달집태우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달이 떠오를 때 솔가지 등에 불을 놓아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는 풍속인데 달집이 훨훨 잘 타야만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한다.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므로 사람들은 소원지 써서 함께 불사른다. 근래 산북면에서 해마다 달집 태우기 행사를 이어 왔으나 코로나로 인해 중지하였다.

정월(正月) 놀이로는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종경도놀이(從卿圖, 昇卿圖) 등이 있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윷놀이 등 일부만 생활 속에 남아 있고 연날리기는 의성군에서 세계축제로 승화되고 대다수 놀이는 보기가 어렵다.

입춘(立春)은 24절기 중에서 첫 절기로 이날에는 대문이나 기둥, 대들보, 천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천증세월인증수(天增歲月人增壽) 춘만건곤복만가(春滿乾坤福滿家) 등 입춘축(立春祝)을 붙인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태 속에 얼마 전까지 이어오던 우리의 고유 풍속이 원형을 잃고 퇴색되거나 사라지고 아직은 일부 남아 있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어르신들의 추억 속에서 그리움만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도 설날과 추석의 차례와 성묘는 전승력을 갖고, 민족 대이동이라 할 수 있는 명절 풍속을 이어가고 있고, 편리에 따라 자녀들이 사는 서울 등 대도시로 역귀성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세상이 많이 변하여도 사람 사는 이치는 같고 우리의 것이 소중하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외래문화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우리 고유 정서와 가치관, 정체성을 가진 전통문화를 그대로 이어가거나 새 시대에 맞춰 변화, 응용, 승화시켜 지역 축제화는 물론 한민족의 위상을 높이고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등 상술에 의한 것이 아닌 우리의 전통문화가 기반이 된 K-문화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세계를 주도하는 문화 콘텐츠가 되기를 바란다.
       

정월正月 맞이/ 이만유 詩

섣달그믐날 밤
아이들 신 훔치러 살금살금 온 앙괭이
문 앞에서 체 구멍 세다 밤새우고

둥둥둥
천신天神 맞이 영고迎鼓 울리면
환한 새 천지天地 열린다

잡사雜事 중단하고 다례茶禮 올리고
「새해 복福 많이 받았다지」 언영言靈 담긴 덕담 주고받고
부럼 깨물고 나무 시집보내고
세주歲酒 귀밝이술 한잔에 모든 문이 열린다

정월 대보름 맞이하면
한해 꿈 실어 둥근 달 둥근 마음
아롱다롱 연에 실어 띄우리

풍년들고 태평하길
액을 쫓고 복을 비는 달집태우기
가슴과 가슴에 불꽃이 활활
북 치고 장구 치고 얼씨구절씨구
우리 모두 어울려
어깨춤 덩실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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