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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대한민국의 시초는 3.1운동

조덕수 기자 입력 2022.02.22 10:34 수정 2022.02.22 10:47

김보현 경북북부보훈지청 보상과

↑↑ 김보현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근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첫 번째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탄생 첫 발판으로 3.1운동을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은 3.1운동의 주역으로 유관순 열사 그리고 주역이 되었던 장소로 태화관, 탑골공원을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고, 3.1운동의 이후에 지방 곳곳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많은 이들이 있지만 저는 그 중 몇 분들과 대표 장소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1919년 3월 19일에 일어난 만세운동 장소로 의성군 도리원 장터가 있습니다. 대사교회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으로 이양준, 이종출, 김옥돈 등이 주도하였으며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이가 7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만세대열은 1시간 정도 만세를 불렀습니다. 

경찰이 시장을 폐쇄하자 군중들은 도리원 주재소로 향했습니다. 경찰은 주재소가 포위되자 만세운동 참여자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선두에 있던 권해운, 이양준 등 7인은 총상을 입었으며 권해운은 대구로 호송 도중 숨지고 말았습니다. 

일본 군경은 부상자까지 체포하였고, 대구 주둔 일본군 제80연대에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일본군은 안평면의 마을을 다니며, 주도자를 검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51명이 체포되었고, 46명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191년 4월 3일 예천군 용문면 주민 100여 명이 용문면 사무소 앞 도로를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벌인 곳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권석인이 재종형인 권석호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비밀리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권석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백여 명의 군중들이 함께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들은 장터를 돌며 시위행진을 벌였으나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해산당하고, 주동자 11명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 뒤 6명이 검거되고 이들 중 재판에 회부되어 형을 받은 사람은 10명이며, 징역 6개월에서 4개월의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위 장소들 외에도 우리나라의 건국을 위해 헌신한 선조들을 위해 오늘 하루는 우리나라의 뿌리인 3.1절이라는 날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이들을 위해 한마디 외치고 싶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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