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49) 국립발레단 단장이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코르 드 발레(군무진)로 입단한 지 30년 만에 토슈즈를 벗었다. 22일 밤(현지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전막 발레 '오네긴'을 끝으로 현역 무용수를 은퇴했다.'오네긴'은 20세기 최고의 드라마 발레로 통한다.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소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다.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이다. 강수진의 타티아나는 연기와 기술 면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앞서 지난해 11월 한국 현역 고별 무대로 미리 선보인 타티아나는 감정 면에서 역대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네긴의 러브레터를 매몰차게 찢어버리고 오열했다. 국립발레단 등 발레계에 따르면 이날 연기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한국 은퇴 무대처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단원, 스태프 등 100여명이 한사람씩 무대에 올라 강수진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을 순차적으로 안겨준 것으로 전해졌다. 공연장 1400석을 모두 채운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객석에는 한국인도 다수 눈에 띈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은퇴무대를 보기 위해 일부러 현지를 찾은 이들이다. 관객들은 강수진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빨간 하트 그림과 함께 '당케(Danke·고마워요) 수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크게 흔들며 강수진의 이름을 연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SNS 등에 따르면 표가 매진됐음에도 오페라하우스 앞에는 취소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강수진 단장은 국립발레단을 통해 "팬들이 준비해준 행사는 정말 몰랐는데, 행복했다"고 감격해했다. 이날은 그녀의 남편 툰치 소크멘(53)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는 토슈즈 안에 꽁꽁 감춰놓았던 강수진 발 사진으로 유명하다. 피카소의 작품 같다며 찍어준 그녀의 발 사진은 마치 고목을 촬영해놓은 것 같다. 빛나는 외모와 화려한 무대 위 모습과 달리 그녀의 발은 울퉁불퉁하고 피멍으로 가득하다. 남들보다 몇 배 노력한 증거다. 해외 유학 1세대인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꾸준히 성장하며 1996년 수석무용수 자리까지 올랐다. 이 발레단의 종신 단원이기도 하다. 1999년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 2007년에는 최고의 예술가에게 장인의 칭호를 공식 부여하는 독일 궁중무용가(캄머탠처린)에 선정되기도 했다. 강수진은 공연 전 현지 일간지 슈투트가르터 차이퉁(Stuttgarter Zeitung)과 인터뷰에서 "발레리나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봤다"며 "슈투트가르트 팬들의 사랑에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는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적었다. 30여년간 해외무대에서 한국 발레계를 지켜보다가 2014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된 강수진은 2년 반동안 안정적으로 이 발레단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서 마지막 공연 이후 국내에 들어와 발레 행정과 후배 양성에 더욱 주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