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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파랑새가 있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4.10 13:37 수정 2017.04.10 13:37

역사적 사실을 회고해 보면 1388년 고려우왕 때 반란에 대한 사건이 벌어졌다.순군 상만호란 군직에 있던 염흥방은 우왕에게 정삼품 벼슬인 밀직부사인 조반이 반란을 일으켜 그가 군대를 이끌고 수도 개경으로 쳐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놀란 우왕은 조반의 반란을 물리칠 계략을 명령했다. 그런데 반란의 기미가 영 이상했다. 반란군이 고작 6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염흥방의 무고였다. 염흥방의 집사인 이광이 조반의 땅을 강탈하고 능욕하자 조반이 이광을 죽이고는 사태의 전말을 알리기 위해 염흥방이 있는 개경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란으로 보고하고 염흥방은 조반을 반란죄로 직접 체포해 고문했다. 그러나 어디서든 양심진실은 전해지는 법이다.고려우왕도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염흥방과 그의 주변 세력을 체포한 뒤 사형에 처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염흥방은 젊은 시절 개혁적인 인물이었다. 명문가 출신으로 공민왕 때 과거에 장원급제했고 국가 재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교육기관 설립에 매진했으며 당대의 권세가인 이인임을 비판하다 귀양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염흥방의 나라충정은 딱 거기까지였다. 한번 귀향고생한 뒤로는 오히려 이인임 편에 붙어 권세를 누리는 데 맛을 들였다. 벼슬을 팔아먹고 힘없는 자의 재산을 약탈했다. 심지어 국가 재산을 사유화하여 횡령하기도 했다.그러다 비참하고 비루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초심을 잃고 권력과 재물에 탐닉했던 자는 염흥방과 같은 간신은 역사에 수 없이 많다. 조선시대 이이첨이나 홍국영 등 개혁가들은 젊은 시절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의에 충실했다. 그러나 권력을 맛본 뒤로는 ‘간신(奸臣)’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 중종 때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은 기득권 세력이던 훈구파에 맞서 개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조광조 등 많은 사림이 목숨을 잃었다.그러나 선조 이후 시대의 주류가 되면서 사람들도 변했다. 토지개혁을 추진하던 이들이 더 많은 토지를 얻기 위해 추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개혁 세력이 도리어 ‘간신(奸臣)’ 대상이 된 것이다. 생각하여 표현함에 순수함 지켜야 한다고 했던가? 그대로 간직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러나 순수한마음을 잃는다면 나라일의 하는데 있어 성취는 없다. 오히려 오명만 남을 뿐이다. ‘처음생각의 울림’이 크게 들리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21세기 세계는 어떤가? 아니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그런 일이 없는가? 살펴 볼 일이다.현 실세에 붙어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거나 불과 5년에 불과한 권력에 몸을 기대에 온갖 이권을 챙기고 닭 벼슬보다 못한 권좌에 앉아 권력자 간자들의 집단적 사리사욕에 국민(國民)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자는 없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대한민국(大韓民國) 개혁의 선두에 섰던 권력자 간자들이 가질 줄은 알아도 버릴 줄 모른다. 권력자 간자들은 흔히 ‘모든 권력은 국민(國民)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강조하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말 뿐이고 5년마다 마다 되돌이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진정 마음생각 국민(國民)정치를 할 수는 없을까?이번대선은 민주화이후 전례 없는 다자정당 후보선거전인 것 같다. 다자구도에 보수당기반의 후보자감은 보이지 않고 기선을 잡은 제1당은 무늬만 개혁이고 나라세움에 이상한 짓거리만 할 간신(奸臣)무리들이 판치고 있다. ‘촛불시위 참석 안했다고 대선후보자 자격박탈이라고.’ 자가당착에 빠진 간신(奸臣)적 선동자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대한민국(大韓民國) 안정을 최우선을 지켜온 신보수(新保守)들이여 차라리 바위가 될 수 없다면 생각하는 정치에 마음을 주어 대한민국(大韓民國) 나라세움에 선봉운동을 하자. 5.9로 국민생각(國民念)을 보여주자.’ 대한민국(大韓民國)나라세움에 이답(耳答)이라 했던가? 국민생각(國民念)은 보지 않아도 듣고 답해야 한다. 대선후보자라면 이정도 감량(感量)은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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