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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밥 이야기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2.07.04 10:09 수정 2022.07.04 10:17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의 통화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특별하지도 않은 그동안의 여러 가지 일을 내게 정겹게 전해 주었다. 

나도 실은 그 사람 소식이 궁금하였지만 일부러 전화 할 계기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그의 반가워하는 목소리는 내가 그 사람에게 소홀한 것 같은 죄책감마저 들게 하였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였지만 40분 넘게 걸렸다. 그러면서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하였다. 꼭 그러자고 덥석 약속을 했다. 날짜를 정한 것이 아니므로 언제 그 약속이 이뤄질지 모르지만 나는 정확히 약속을 하였다는 정서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매주 목요일 ‘밥 먹는 날’을 정하여 몇 년 동안 실천해 온 아주 친하게 지내는 회원들이 있다. 굳이 서로 분담하지 않아도 그 날 해 온 음식을 펼쳐 놓으면 그야말로 특급호텔 뷔페와 다름없다. 잡곡밥에 닭볶음, 호박버섯탕, 청국장, 콩나물무침에다 김치만 하더라도 배추김치, 물김치, 파김치, 깻잎김치에 제철과일, 고구마까지 사전에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중복되거나 결핍된 음식이 하나도 없는 명실상부 완벽한 한식 뷔페다. 비주얼이나 맛은 내로라하는 웬만한 맛 집 보다 훨씬 낫다. 

가족과 진배없으니 우선 오고가는 정이 음식에 듬뿍 배었고, 그래서 정성이라는 것을 가득 쏟았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우리들 마음이 단순한 ‘밥 한 끼’ 같이 한다는 생각 그 이상의 우정과 일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들과 함께하는 ‘밥’은 가뜩이나 힘든 요즈음의 팍팍한 세태 속에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용기와 지혜를 주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밥심’의 생활 활력소다.

그러고 보니 일상생활에서 ‘밥’처럼 흔하지만 친근한 말도 드문 듯하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에서 배우 송강호의 “밥은 먹고 다니냐?”는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근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터라 과거 그의 이 멘트는 재조명을 받고 있다. 이 말은 TV인기프로에서도 응용되었고, 음식점 상호로도 쓰이고 있을 만큼 유행을 타고 있는 중이다. 그 말은 이제 안부를 묻는 친근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필자가 객지에 나가 있는 두 아들에게 전화할 때도 “밥은 먹었니?”하고 묻곤 하는데, 그 말은 혹시나 직장 일하느라, 대학원 공부하느라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는 인사말이지, 그 시간에 꼭 끼니를 해결하였는지를 점검하려 하는 말이 아닌 경우와 같다.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밥 잘 사주는 누나'에도 ‘밥’이 들어간다. 몇 년 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제목의 어느 방송사 드라마가 있은 후로 ‘밥을 사주는 일’은 단순히 하나의 끼니를 때우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아름다운 마음씨의 예쁜 누나가 밥까지 사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의 제목으로 ‘밥’을 넣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대중가요 가사에 '밥만 잘 먹더라'도 있다. 죽을 만큼 사랑한 사람과의 이별을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는데 아무 일 없듯 ‘밥’만 잘 먹고 있음을 탄식조로 부르는 노랫말로 주목을 끌었다.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뜻이고, 이별 때문에 한순간 몹시 가슴 아파도 극복했다는 뜻이거나 의도적으로 극복하려 애쓴다는 뜻일 거다. 사랑의 아픔을 이기려 애쓰고 있다는 메시지를 ‘밥’을 잘 먹고 있다는 표현으로 빌려 쓴 것이다.

부정적인 뜻으로 이 말이 쓰일 때도 있다. '콩밥'이 그렇다. 콩밥은 의미상 콩을 섞어 지은 밥일 뿐인데, 그것이 갖는 뉘앙스는 전혀 엉뚱하다. ‘콩밥을 먹는다’는 것은 ‘감옥에 간다’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콩이 갖는 여러 가지 영양소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 교도소에서 많이 쓰였다고는 하는데, 그러나 지금은 어떤 이유로 콩밥이 제공되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콩밥하면 교도소를 떠올리기 일쑤가 되어버린 것이다.

‘목구멍에 밥은 넘어 가냐’는 다소 격앙된 표현도 있는데, 이는 할 일도 못하는 주제에 밥을 먹느냐는 말로, 밥 먹을 가치 있는 행동을 못했다는 심각한 꾸중이 들어있는 표현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린다’거나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을 은근히 나무라는 말이다. 또 ‘한 술 밥에 배부르랴’는 어떤 일이든 한 번 시도하여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으로 꾸준한 노력을 권장하는 말이고, ‘밥이 약보다 낫다’는 것은 아무리 약이 병에는 좋다하더라도 건강에는 밥을 잘 먹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어쨌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 ‘밥’을 빼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밥’에는 그만큼 우리들의 생활 자체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으며, 그래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소박한 마음의 징표로서 친근감의 표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참에 나도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그동안 소원했던 까닭은 코로나 때문이지 결코 당신들을 잊어버려 그런 게 아니라고 살갑게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꼭 이 말을 넣어야겠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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