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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봄이 왔는데 파랑새가 없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4.19 15:50 수정 2017.04.19 15:50

봄 누구나 참 좋아하는 단어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계절 중 첫 번째 철을 의미하며 인생의 한창 때를 ‘봄’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봄이라는 말 속에는 풍성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말 앞에 ‘파랑새’를 붙이면 봄은 날개를 단다. 한 뼘씩 다시 나아가고 세상에 대한 시선을 다시 돌이켜보고 그 자체만으로 인생의 전성기를 만들어 가는 시작이 봄인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세상은 수시로 변해 가고 있다. 이왕에 사회가 변해 간다고 하면 나와 내 가족 이웃 사회에 좀 더 유익한 방향으로 변해 가면 얼마나 좋을까? 열심히 산다는 것이 경쟁에서 누구를 이기거나 혹은 돈을 많이 벌기위한 것만은 아니다. 각자 전문분야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이란 그렇게 전문 분야만으로는 전체를 다 알 수 없다. 사회는 각종 이슈와 정보를 쏟아내는 현장이다. 좋은 점도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합리한 부분도 많고 후세들을 위해 고쳐야 할 내용도 많다. 상황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하는 것. 그것도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다.’ ‘하루 세끼 밥 먹으면 되지’ 요즘 세상에 대충 이렇게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겠나마는 뚜렷한 삶의 목표로 열정적으로 살아도 힘든 판에 그러한 삶의 방식은 바로 자신을 죽이는 독이다. 번개같이 지나가는 하루에 부채질을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허나 경우에 따라서는 궂은 일도 마다 않고 꾸중 물에 손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기억의 한쪽을 지우지 못하고 안락의자만 보아서야 되는 일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단지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몰라 갈팡질팡할 뿐이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살던 힘들고 버겁기 마련이다. 과거 조선시대의 철학자는 영상물이 현란한 그런 시대에 산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이 인간정신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다.당시 나윤(羅倫)이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견전 즉 소수고(所見專 則 所守固)’ 여기서 전(專)은 여러 가지가 어지럽게 섞이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위 구절은 ‘보는 것이 한결같으면 굳게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눈과 마음을 엉뚱한데 빼앗기기 쉬운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새겨들어야 할 권면이 아닐 수 없다. ‘눈이 죄를 범하면 차라리 눈을 빼버려라’는 성현의 무서운 충고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그 같은 마음을 굳게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당신은 몇 살인가? 지금 무엇을 시작하고 준비하고 있는가? 정말 너무 늦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좌절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시 봄이 오는 것처럼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열정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옛날의 봄은 마음도 설레고 파랑새가 올 것 같은 희망적이었는데.......내일의 봄은 파랑새가 보이지 않는다. 나라의 지도자란 자(者)가 세상 꼴을 아지랑이도 없는 봄으로 맞이하게 했다. 보수란 존재의 의미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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