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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셰어런팅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2.09.26 09:38 수정 2022.09.26 10:17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요즘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주로 자식 걱정이 주된 이야깃거리다. 결혼을 시켜야 하는데 인사시키려 데리고 오는 사람이 없다든지, 취직을 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걱정이라든지 하는 제법 굵직한 걱정에서부터 소소한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걱정거리까지, 대부분은 주로 자녀들에 대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부모가 나서면 이래라저래라하는 모양새로 비추어져 자녀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아무 말이라도 하지 못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부모가 자녀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시대가 아니며, 자녀 또한 그런 과잉관심에 불편한 마음을 가질 것이므로, 가능하면 자녀의 일에 간섭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원론적인 다짐까지 한다.
 
이같이 부모가 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자녀 걱정인데, 자녀의 마음은 그런 부모가 고맙지만은 않은 것 같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생각한다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착잡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셰어런팅’이다. ‘셰어런팅’은 영어 셰어(share:공유)와 페어런팅(parenting:양육)을 합친 말이라 한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녀의 성장과정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소셜미디어 등에 올려, 다른 사람들과의 공유의식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아이를 양육하면서 그 과정을 알려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동시에 정서적 유대감을 갖자는 취지의 육아 실천 사례인 셈이다.
 
필자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여느 이웃의 또래 어머니들과 육아 정보를 많이 공유했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았고, SNS 등의 소통 수단도 없었기 때문에 육아 정보는 주로 대면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프라인 친분이 쌓여 몇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서로 연락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그때 명명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셰어런팅’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어릴 때 아이의 성장과정을 사진첩으로 만들기도 하였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집안 곳곳에 걸어두기도 하였다. 두고두고 추억을 되새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녀의 생활 전반에 들어가 후회 없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어머니의 도리라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최근 아이의 입장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을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강요했다는 불평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게 되면, 어머니는 아이에 대한 ‘인격무시’ 굴레가 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 논란이 된 내용도 그런 것이었다. 육아를 주제로 15년간 연재되며 계속된 인기를 누린 만화 작가의 딸이, 어릴 적 자신을 소재로 한 만화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생활이 전국에 공개되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는 공식적인 항의를 제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주부이면서 엄마로서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일상의 감정이나 소소한 일화를 공감적으로 그려내면서 또래의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들과의 정신적 유대감을 통한 육아 정보를 공유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고 여러 상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그런 과정에 등장하는 아이의 감정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소재가 되기를 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자신의 동의없이 전국적으로 공개되어 명백한 사생활 침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원치 않았던 내 개인정보를 공개하면서 나의 정신을 망가뜨렸다”는 것이 논란의 주된 쟁점인데,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육아 컨텐츠가 아이를 희생시킨 결과물”, “자녀의 존엄성을 이해하지 못한 작가”와 같은 표현으로 논란에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아이가 외모 콤플렉스가 있어서 이것이 공개되었다거나 ‘셰어런팅’으로 인해 성장 후 상당한 정신적 손해를 입은 것이라면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이런 것까지 사회적으로 이슈화시켜서 잘잘못을 따진다는 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원천적 사랑을 감안하지 않고 이 세상을 지나치게 각박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라는 관점에서는 이 세상 무엇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오직 자녀가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일 터인데, 일부러 자녀의 약점을 들춰내어 공개하려 한 의도가 아닌 게 분명한데도 굳이 그런 것조차도 아이의 사생활 침해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만약 후일 자신의 아이가 항의를 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아이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어떤 절차가 필요한 세상이 올까 심히 걱정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지나친 노출은 당연히 경계해야 마땅하다. 최근 인터넷에 올린 자녀의 사진이 도용당하여 범죄에 이용되었다거나 다른 사람의 악플대상이 되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의 사진조차 자녀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적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되며, 이런 것까지 이슈로 삼아 논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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