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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승민을 위한 변명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5.22 10:28 수정 2017.05.22 10:28

‘실패와 실패와 실패, 부분적인 성공, 그리고 다시 실패, 그러나 결국에는 완전한 승리’ 랜돌프 처칠의 표현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답다. 뛰어난 지도자의 인생 역정을 이렇게 압축적으로 묘사했다. 역정의 주인공은 벤저민 디즈레일리 영국 총리.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다. 디즈레일리 스스로도 “기름이 잔뜩 묻은 장대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그는 1837년 하원의원에 당선될 때까지 6차례나 낙선을 거듭했다. 보수당 당수로서 치른 총선 성적도 1승2패에 불과했다. 하지만 1승을 통해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디즈레일리는 총리로서 국내에서는 노동자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국제적으로는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보수의 혁신을 통해 나라의 발전을 이끌었다. 영국 보수당은 1846년 이후 약 30년간 정권을 잡지 못했다. 세상은 변했는데 수구(守舊)를 고집했다. 도시 상공업자 및 노동자들이 나날이 늘어나는데도 토지 소유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했다. 영국 의회는 1815년 곡물법(Corn Law)을 도입했다. 곡물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입 곡물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토지소유계급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풍년이 들더라도 곡물 가격은 하락하지 않았다. 보수당은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 이후에도 곡물법을 지지했다. 영국 자유당은 1846년 보수당의 반대에도 곡물법 폐지를 밀어붙였다. 도시 거주자들은 자유당의 손을 들어줬다. 보수당은 농촌 지역만을 대변하는 지역정당으로 몰락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영국은 산업혁명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도시 상공업자들의 경제력은 나날이 확대됐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디즈레일리는 보수당이 사회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 자유당은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며 상공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디즈레일리는 "상공업자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제 욕심만 채운다"고 비판했다. 보수당은 노동자 권리 강화, 공공 위생 환경 개선 등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보수당은 1874년 총선에서 농촌은 물론 도시 지역에서도 승리했다. 보수당은 집권 후 2년간 노동자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보수당은 변화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되찾았다. 시대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보수(保守)를 과감하게 보수(補修)했다. 동료 시민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했다. 그게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자 정의의 실현이라고 믿었다. 진정한 보수는 언제나 변화를 모색한다. 변화는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변화의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는 보전 수단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보수는 단지 급격한 변화를 경계할 뿐이다.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급회전이 자동차의 전복을 가져오듯 급진적 변화가 사회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보수의 변화는 많은 지원 세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의인(義人)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보수의 변화는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곳곳에서 의인들을 찾을 수 있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를 찍은 785만 명의 유권자 중에서도 많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1960년 2월28일 이승만 정권의 민주주의 유린에 맞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경북고 등 대구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이승만 정권의 폭정을 규탄했다.이른바 2∙28 민주운동으로 4∙19혁명의 불씨 역할을 했다. 어느 누구도 이들을 ‘이승만의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정의로운 시민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들이 유승민을 배신자로 규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행위의 본질은 같다.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마음가짐으로 유승민을 도와주는 게 맞다. 부정적 정체성(negative identity)을 통해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 보수(保守), 동료 시민들에 대한 기본적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보수(保守)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그 대신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보수(保守), 건설적 변화를 마다하지 않는 보수(保守)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을 위한 보수와 진보간의 미래지향적 경쟁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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