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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L(Lay off·해고)의 공포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3.03.27 10:37 수정 2023.03.27 10:53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시인

↑↑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

최근 SVB 파산이 단연 관심사다. SVB(실리콘밸리은행:Silicon Valley Bank)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자산 272조 원, 전체 예금액 232조 원에 달하는 미국 16위 은행으로, 코로나 사태 때 초저금리와 정부 지원으로 IT업계가 호황을 맞으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한 은행이었다. 그런 굴지의 은행이 자금 위기 소문이 난지 36시간 만에 초고속으로 파산한 것을 두고 많은 사람이 놀란 눈치다.

이와 관련한 글도 많이 쏟아지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이렇게 빠른 SVB 파산은 '스마트폰 뱅크런'도 한 몫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 고객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업가들이 거래 은행의 위기 소식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대거 인출하면서 빠른 속도로 뱅크런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실제 SVB에 돈을 예금한 사람들이 당일 금융기관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예금 인출을 시도한 금액이 420억 달러(우리 돈 55조 6000억 원) 정도 된다고 하니, 과히 하루 거래 금액치곤 엄청나다. SVB와 모기업 SVB 파이낸셜이 1983년 업무를 시작하여 업계의 주요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기까지 40여 년이 소요되었지만, 갑작스런 붕괴까지는 겨우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SVB는 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무너졌을까? 발단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불경기 중에 고금리 정책까지 더하여 자금이 긴요해진 기업들이 일시에 예금을 찾기 시작했는데, 은행은 평소대로의 일정 비율의 지급준비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은행은 그동안 사두었던 국채와 주택저당 증권 등을 폭락한 시세대로 팔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엄청난 손실이 우선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은행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면서 너도나도 예금 인출에 가담하게 되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글자 그대로 ‘뱅크런’이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고객들의 손쉬운 예금 인출 방식 때문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크게는 최근의 글로벌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그렇지 않아도 ‘R의 공포’ 때문에 사전 나름대로 자체적으로 긴장하고 있던 차에, 이런 소식은 글로벌 경제계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R의 공포’ 단어는 총체적인 ‘경기침체(Recession)가 가져다주는 공포’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종업원 해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한마디로 ‘경기침체’라고 진단한다. 

경기침체는 그 자체로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L(Layoff·해고)의 공포’로 이어지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경기침체에 선제적 감원으로 몸집을 줄여 나가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L의 공포’ 현상이 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 경제계에서도 이와 같은 ‘R의 공포’, ‘L의 공포’ 뿐 아니라 ‘D의 공포’, ‘M의 공포’에 직면하고 있다는 보도도 간혹 있었다. ‘D의 공포’는 디플레이션의 공포, ‘M의 공포’는 마이너스의 공포를 지칭하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을 진단할 때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L의 공포’가 가장 큰 공포다. 최근 통계에서 30·40대 실업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취업자 수는 반대로 감소하고 있는데, 기업은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고, 따라서 상황에 따라 대량 해고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고 보면, 앞으로의 ‘L의 공포’에 따른 경제적 혼란은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경기침체가 깊어질 것이란 우려로 해외에서 먼저 테크, 자동차, 금융, 유통, 미디어를 포함한 거의 전 업종에서 선제적 감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해고 한파는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또는 점진적으로 번지면서 ‘확실한 글로벌 경기침체의 전조’라고 하는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예컨대 세계적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1,600명을, 골드만삭스는 최소 400명을 해고하고, 자동차 업계에서도 필요 인력 축소, 전동화 비용 증가 등을 이유로 해고가 잇따르고 있다. 포드가 3,000여 명에게 해고를 통보한 데 이어, 벤츠도 지난 브라질 상파울루 공장에서만 3,600명을 감원했다. 전기차 업체 리비안이 전체 1만 4,000명 직원 중 5%를 정리 해고하기로 했고, 중고차 업체 카바나도 지난 5월 2,5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500명을 추가로 해고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이미 ‘L의 공포’가 시작되었다. 금융권 어느 회사는 1982년생 이상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40세가 넘는 직원을 대상으로 감원에 나섰다고 한다. 또 다른 회사는 1967년생까지 희망퇴직을 받았는데, 이는 전체 정규직의 50%가량 된다고 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苦)에 처한 기업들이 퇴직 희망자를 늘이고 신규 채용은 줄이고 있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SVB 파산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 ‘L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글로벌 추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며,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미래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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